#4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사람은 자신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준 사람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까미노를 걷다 보면 수많은 순례자들을 만나지만 그중에서도 잊지 못하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그들은 그들의 세상을 소개해줌으로써 동시에 나의 세계를 넓혀준 사람들이다. 한 달 남짓 되는 이 여정을 더 넓고 깊이 있게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순례길 첫인상이 되어준 눈부신 독일 친구들 덕분이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도중에 옌이 갑자기 물어봤다. 가볍게 던진 공처럼 건넨 질문이 나에게는 꽉 찬 직구처럼 다가왔다. 행복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적도, 내가 행복한 상탠지 생각해본 적도 너무 오래 전의 일 같아서 질문을 듣고 몇 초간 생각하느라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깊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었기에 담백하게 "Sure"이라 답했고 "You look so"라는 답을 받았다. 이전의 나는 어땠을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의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독일 친구들과 저녁을 맛있게 먹고 조금 피곤해져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려 할 때 함께 있었던 모두가 나에게 또다시 행복하냐고 질문했다. 이 상황에서 이런 질문이 왜 필요한 건지 의문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난 정말 행복하지만 피곤할 뿐이라며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로 돌아온 후에 질문에 대해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생각해보면 행복하냐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나의 감정을 깊이 살피기에 좋은 질문이었다. 내가 행복한지 아닌지 생각해보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따라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내 상황과 상태와 나의 생각까지 알아낼 수 있는 예리한 질문인 것이다. 이렇게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나의 상태는 어떤지 판단하고(How) 그 이유를 알아내는 과정(Why)을 반복하는 것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나의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행위는 중요하다. 내 감정을 살피고 이해할 수 없었던 나의 감정과 행동의 근원을 알게 되면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고 나를 사랑한다면 이 세상을 모나지 않게, 나를 중심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렇게 '내가 행복한지, 행복해질 것인지'는 순례길에서 내가 내리는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걷고, 생각하고, 이야기하라
나는 누구보다 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 생각과 서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회사생활로 급격하게 낮아진 자존감은 내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듣고 싶어 하지도 않았나 보다. 나에 대한 질문은 얼버무리며 다른 주제로 넘겼고 그렇게 대화에는 내가 아닌 타인만이 존재했었다. 이렇게 가십거리와 남이 사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점차 묻혀갔다. 하지만 국적도 문화도 다른 낯선 이들끼리 이 길에서 할 수 있는 대화는 서로에 대한 대화뿐이다. 그래서인지 팜플로나 이전까지 길에서 순례자들을 만났을 때는 간단한 대화만 나누고 헤어졌다. 그때의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고, 나와 아빠를 생각해야 하며 걸어야 한다는 집착을 가져서였을지도, 혹은 나의 영어실력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단 이 이유들 때문이 아니라 대화를 지속하지 않았던 근원적인 이유는 내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독일 친구들과는 주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주제로 각자의 관점을 공유하는 대화를 했다. 대화 중 나의 영어 실력으로는 어렵다고 내 자신을 숨기려 하자, 언어는 하나의 수단밖에 되지 않으니 그냥 입 밖으로 뱉으라고, 그러다 정말 어려울 때는 한국어로 말하면 본인들이 느낌으로 이해하겠다 했다. 그들 말대로 언어는 정말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나의 도구가 조금 모자라다면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번역기)를 사용하면 그만이다. 그저 내가 대화하고 싶은 주제도, 나의 관점도, 그에 따른 대답도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대화 소재의 고갈은 나의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내가 내 존재에 많은 관심이 없었기에 개인적인 대화가 될수록 피해왔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알게 되었다면, 이제 대화를 통해 서로의 관점을 나누어야 한다. 대화를 하면서 복잡했던 내 생각이 정리되기도, 더 깊어지기도 하며 예상치 못하게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이렇게 대화하고 관점을 공유하고, 답을 고민하는 과정 또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끊임 없이 질문을 던져준 독일 친구들. 나아가 그들은 대화의 세계로 나를 초대했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러 왔지만 정작 방법은 몰랐던 나에게 행복하냐는 질문으로 나를 알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대화를 통해 내 인식의 한계를 넓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팜플로나 이후로 만나지 못해 바뀐 나의 세상을 보여주긴 힘들지만, 새로운 세계로 나를 소개해준 나의 독일인 친구들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