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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민 Aug 23. 2022

답을 찾아왔는데 질문을 두고 온 거야

#2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프랑스길의 첫 구간은 모든 순례자들이 가장 힘든 코스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 구간이다. 이유인즉슨 20km 동안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기 때문인데, 고도가 순례길 구간 중 가장 높고 험하며, 그 구간 동안은 마을과 상점이 없어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한 채로 시작해야 한다. 첫 째날만 잘 버티면 나머지 800킬로는 거뜬히 걸을 수 있다는 말도 간혹 들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설레면서도 긴장을 가지고 걷기 시작한다. 나도 아침에 일어나 빵을 두둑이 먹고, 혹시나 몰라 각종 보호대와 산 중턱에서 먹을 간식과 점심까지 준비해서 비장히 출발했다.




Magnifique!


 말로만 들었던 피레네 산맥은 엄청났다. 나는 다른 순례자들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는데, 타이밍 좋게 얕게 깔린 안개를 보며 시작했고  광경이 정말 장관이었다.  걸음마다 사진을 찍어댈 정도였다. 출발할  만났던 독일인 '' 이럴  사용하는 프랑스어가 있다며 "Magnifique!"이라는 단어를 알려줬다. 한국에서는 이럴  어떤 단어를 사용하냐는 질문에 '대박', '멋있다'같은 단어들만 떠올라 스스로의 어휘력을 한탄한 것도 잠시, 엄청난 풍경이 안겨준 초행자의 설렘으로 이까짓 피레네 산맥쯤은 금세 넘을  있을  같았다.


 하지만 피레네 산맥은 다른 의미로도 엄청났다. 끝없는 오르막길 너머에는 끝없는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었고, 이렇게 더울 수가 있구나 싶다가도 금세 추워져서 바람막이를 허둥지둥 꺼내 입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러다가 함께 걸었던 순례자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뙤약볕에서 내 숨소리에만 의지하며 걷기도 했다. 여기가 어딘지 가늠도 못한 채 고요히, 그리고 묵묵히 앞만 보면서 걸어갔다. 내가 걷는 이곳이 유럽 땅이 맞나, 순례길이 맞나, 이럴 거면 한국에나 있을걸, 하는 후회도 살짝씩 섞어가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초행자의 설렘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다 제 풀에 지쳐 '나 여기 다시는 안 온다'라고 쉽게 다짐해버렸다가 결국은 '나 여기에 왜 왔지? 왜 걷고 있지?'라는 자문으로까지 이르러버렸다. 순례길에서 누구나 한 번은 겪는다는 '나 왜 여기를 걷고 있지?'를 첫 째날부터 느껴버린 것이다.


 생각해보니까 나는 아빠의 죽음의 의미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는 했지만, 그건 내가 노력한다고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건 순례길을 오기 위해 짐을 꾸릴 때와 같았다. 혹시라도 필요할 것 같은 건 모두 가방에 넣어와 무거워진 내 가방처럼 순례길에서 알아내려는 질문들을 정리하지도 않은 채 쑤셔 넣어 오는 바람에 걸어오면서 모두 넘쳐흘러버렸다. 그중에는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에 대한 답도 있었던 듯하다.


 이렇게 나는 호기롭게 답을 찾으러 왔는데 질문을 잃어버린 것도 모자라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32일간의 까미노는 '왜 나는 이 길을 걷고 있는가?'의 답을 찾는 길이 되었다.



                   

2022. 05. 29 피레네 산맥을 넘는 중
같은 날 피레네 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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