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은 여러 가지 길로 나뉘어있다. 프랑스길, 북쪽 길, 포르투갈길 등 다양한 루트들이 산티아고로 향한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길은 프랑스길로 파올로 코엘료의 '순례자'에서도 이 프랑스길을 배경으로 한다.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에 닿아있는 마을인 생장 피에 드 포흐(Saint-Jean-Pied-Port)에는 경계와 설렘, 그리고 환대로 가득 차 있었다.
경계와 어색함 그리고 환대와 기대감
파리에서 생장 피에드뽀흐를 가는 길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프랑스 국철인 SNCF를 타고 바욘으로 간 뒤, 기차로 갈아타면 작은 마을에 내리는데 거기서 또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당시는 우회도로로 돌아가서 그렇고, 보통은 한 번 환승하면 바로 도착한다고 한다.) 그렇게 마지막 버스가 피레네 산맥 일부를 돌아가면 그제야 생장에 도착할 수 있다. 마지막 버스에는 순례자들만이 가득하다.
이 마을은 낯설어하는 초행자들로 가득하지만 동시에 그들을 환대해주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나는 가장 저렴한 SNCF 첫차를 타고 와서 순례자 사무소가 열리기도 전에 도착했다. 이미 가장 먼저 기다리고 계셨던 분은 두 번째 순례를 시작하러 온 한국인이셨다. 아무 계획 없이 온 나를 걱정 어리게 바라보셨던 건지 (혹은 ‘얘가 어쩌려고 이러나’ 정도의 생각일 수도 있다.) 기다리는 동안 본인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한 보따리 풀어주셨는데, 이렇게 단기 속성으로 과외를 받다 보니 금세 순례자 사무소가 여는 시간이 되었다. 코로나 이전에 찾아온 많은 한국인 순례자들 덕에 한국어로 되어있는 안내지로 편하게 안내를 받고 수월히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순례자들을 맞이해주는 사무소 직원들은 정말 친절하다. 알려주신 대로 가장 유명하다는 ‘55번 알베르게’로 가서 좋은 자리에 짐도 풀었고, 출출해하던 차에 한국인 아주머니를 만나 밥이랑 멸치, 명란젓, 김 같은 집밥을 든든히 얻어먹기도 했다.
이렇게 순례를 시작하는 이곳에는 동료애적 환대와 응원의 환대로 가득 차 있었다. 동료애적 환대는 같은 길을 걸을 동료에게 건네는 무언의 공감대였을 것이고 응원의 환대는 호기롭게 이곳을 찾은 순례자들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이었을 것이다. 새로운 곳에 대한 낯가림이 없는 편은 아닌지라 기대보다 두려움이 더 컸지만 다양한 모양의 환대를 받아가면서 내일부터 걸을 이 길이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평범한 일상의 부재
여름의 스페인은 해가 정말 늦게 진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이제 저녁인가? 싶을 정도로 해가 뉘엿해진다. 아직 밖은 밝지만, 순례자들은 내일을 위해 하나 둘 잠들었고 나는 잠이 오지 않아 일몰을 볼 겸 숙소를 나섰다. 길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북적였던 낮과 비교하면 정말 고요했다. 다들 걱정과 기대를 안고 숙소에서 잠을 청하고 있겠거니, 조용히 숙소 옆 벤치에 앉아서 일몰을 구경했다.
내가 이곳을 어떻게 상상했고 기대했는지는 모르지만 비장했던 마음가짐과는 달리 이곳은 평범했다. 순례길을 가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 내가 특이하다는 반응이었다. '역시 너답다'부터 '한 달 동안 뭐하러 걷냐, 왜 돈 내고 고생을 하냐'는 말도 꽤 들었다. 스스로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온 것도 한 몫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특이하거나 사연이 있는 사람들일 거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곳은 정말 평범한 곳이었다. 잔뜩 겁먹은데 비해 수월했던 하루라 ‘뭐야 별거 아니잖아’라고 안도를 내쉬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평범하게 걷다 보면 내가 얻고자 하는 이 무거운 질문의 대답을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어서 이 평범함에 끔찍이 묻혀버려 빈손으로 돌아가면 어떡하나 탄식도 하면서 말이다. 생각을 환기시키려 나갔다가 더욱이 복잡한 감정을 가져온 내가 미련해지긴 했지만 숙소에 돌아와 까미노의 첫 날을 기록했다. 그리고 이 일상 같은 걸음 속에서 내가 꼭 가져가고 싶은 것들, 그렇게 산티아고에서 바뀌어있을 나의 모습들을 적어갔다. 그 목록은 아래와 같다.
과연 내가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지금의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이 소망들을 이룰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