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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민 Aug 19. 2022

아빠의 마지막 용돈

#0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모두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에 있다. 내가 도착했던 2022년 7월 기준으로 산티아고데 콤포스텔라에는 매일 1,000명이 넘는 순례자가 도착한다고 한다. 이 많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걷고 있는 이유들은 모두 다르고, 무게 또한 가늠할 수 없겠지만, 나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이유를 가지고 왔다고 생각했다.





 2022년 2월,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여느 때와같이 나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여느 때와 같이 바쁘면서도 졸린 평일 오후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언니의 전화가 울리기 전까지는. 거절 버튼을 누른 지 1초도 안되어서 다시 전화가 오는 것을 보고 보통일은 아니겠거니 생각은 했건만. 전화를 받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지만 아빠는 의식이 없었고, 매우 힘겨워 보였다. 결국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고, 아빠는 예순이 되지 못한 59세의 나이로 추운 겨울에 우리 곁을 떠났다. 


'마지막 순간에 아빠는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을까?'


 아빠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계속해서 맴돌았던 질문이다. 내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계셔서 말은커녕 숨쉬기조차 힘들어 보이셨다. 의사 선생님이 우리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라고 했을 때도 아빠는 조용히 듣기만, 그리고 눈물만 흘리고 떠나셨다. 미안하다거나 사랑한다거나 그런 흔한 말조차 듣지 못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평소에 살가운 딸이 아니었어서,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했던 후회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리만큼 그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다. 아빠의 마지막 눈물에는 어떤 말이 담겨있을까? 그 순간에 아빠는 어떤 말을 전하고 싶었을까?


 장례식이 끝나고 아빠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아빠의 차키에 걸려있던 작은 묵주를 발견했다. 아빠는 가톨릭 신자셨다. 유아세례를 받으셨고 성당에서 봉사까지 하셨을 정도로 나름 독실하셨는데 아빠에게 어떤 일이 생겼고 그 이후부터는 냉담자가 되셨다. 당시까지 나는 아빠가 자의로 발길을 끊은 줄 알았지만 누구보다 성당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묵주를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아마도 아빠는 그 마음을 모두에게 들키고 싶어서 이렇게나 상징적인 묵주를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두었던 것 같다. 이런 아빠의 마음을 모른 척할 수 없었고 나는 군말 없이 아빠의 묵주를 챙겨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가 떠나기 전, 엄마는 부조금의 일부를 우리에게 주셨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는 용돈'이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준 이 용돈은 나와 아빠 모두에게 의미 있게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고 그렇게 서울로 가는 버스에서 갑자기, 정말 갑자기, 순례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길을 가면 내 머릿속을 맴도는 그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날짜는 더 이상 알 수 없지만, 오래전 아빠와 나





야곱을 아시나요?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그 당시의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않았다. 회사생활로 적잖이 힘들었던 나는 아빠의 죽음 이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아빠 생각으로 밤낮을 울었고 하루 종일 누워있었고 그렇게 잠들면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역경은 헤쳐나가야 한다고 배웠지만, 아빠의 죽음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이유가 있길래 일어난 건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는 알아내야만 했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 아는 것은 '스페인에 있는 순례길', '스페인 하숙' 정도로 여느 한국 사람이면 떠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 순례자가 되기로 다짐을 하고 이 길이 무엇인지 알아보면서 더더욱 나는 이 길을 가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가끔 모든 환경과 사건들이 하나를 가리킨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때가 지금이었다. 모든 신호(sign)와 상황이 산티아고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빠의 가톨릭 세례명은 '성 야고보', 즉 산티아고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산티아고의 무덤까지로의 여정이니, 나에게는 아빠의 무덤으로 가는 이상한 여정이 된다.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를 버려요만 여정이 끝나는 것처럼, 나도 아빠의 무덤에 아빠를 정말로 묻어주어야 나의 슬픈 감정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아빠의 죽음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내가 아빠와 나에 대해서만 온전히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면, 그렇게 걸어서 산티아고 무덤이 있는 대성당에 도착한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아빠를 내 기억에 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길에서 내가 집착해왔던 아빠의 죽음이 어떤 의미였는지, 아빠가 나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어 했는지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렇게 나는 산티아고의 무덤으로 떠나는 이 길을 선택했다. 아빠의 성인인 산티아고 무덤으로의 여정. 아빠의 무덤에 아빠를 묻어주고 와야 하는 여정. 아빠의 죽음의 의미를 찾으러 간다는 다소 불효스럽고 모순적인 이 여정. 그리고 아빠의 마지막 말을 듣고 와야 하는 여정. 스스로도 정립하지 못한 채 떠나지만, 어찌 됐든 나의 800km가 되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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