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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민 Aug 25. 2022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줄 테니까

#3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죽기 살기로 피레네 산맥을 넘어 도착한 론세스바예스는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로 바글바글했다. 길에서 마주쳤던 순례자들도 대부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만남의 광장처럼 모두가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는 건 순례길에서 첫 째날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이다.






 론세스바예스에는 수도원에서 규모가 큰 알베르게를 운영하는데, 이 마을에서 알베르게는 이곳 하나뿐이다. 피레네 산맥을 넘은 순례자들은 충분히 지쳐있기에 대부분은 사막의 오아시스같이 등장한 이 알베르게에서 쉬는 것을 택한다. 이렇게 이 마을이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순례자들의 만남의 광장이 된 것이다. 이처럼 첫날에는 론세스바예스라는 공동의 목적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길에서 만났던 순례자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다.


 순례자 사무소에서는 산티아고까지 적당한 거리를(평균 25km 정도) 나누어 총 35일 동안의 일반적인 하루 일정을 추천해준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그 일정을 따라가곤 하는데, 가는 길에는 수많은 마을들이 있고 각자의 상황에 따라 더 쉬어가기도, 더 걸어가기도 하므로 모두가 이 방식에 맞추어서 걷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나의 선택에 맡겨지는 것이다. 나의 선택으로 누군가와는 동행이 될 수 있지만 누군가와는 영영 만나지 못할 수 있다. 진정한 어른은 본인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매일마다 내 선택의 결과를 느껴야 한다니, 부담스러웠고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나는 이 순례길의 법칙에 따라야 하는 순례자이므로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데 점차 익숙해져야만 했다.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줄 테니까.'

 김동률의 '출발'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나도 길을 믿고 걷다 보니, 이 길이 나에게 - 항상 선택에 어려움을 겪고 자주 미련으로 뒤돌아봐왔던- 내가 해온 모든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여정을 만들어주었다.




2022. 05. 29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서. 내가 사랑하는 카탈리나가 우연히 찍혔다.




나중 말고 지금. 지금 현재


 순례길을 걷는 초반에는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자체를 어색해하고 서로 낯을 가리곤 한다. 나도 낯을 은근히 가리는 성격이라 초면에는 말을 아끼곤 했는데 순례길에서는 그렇게 해서는 인연을 놓치게  수도 있다.  째날, 함께 저녁을 먹었던(이제는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프랑스인과 서로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다들 내일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는 분위기였다. 나도 '내일 만나면  얘기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휴식을 취하러 갔고, 예상했겠지만  프랑스인과는  이후로  번도 만나지 못했다. 피레네 산맥을 처음 같이 넘었던 옌과도 다음  서로 다른 마을에 머물러 만나지 못했다. 자주 마주쳐서 '우리는  그랬듯이 우연히  만날 거야'라며 다음을 기약했던 카탈리나와도  말을  이후로는 영영 만나지 못했다.


 이들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쉬움이다. 전하고 싶은  생각만 한 채 전해주지 못했고 다음에 만날 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연락처 같은 수단도 떠올리지도 못했기에 아쉬운 것이다. 초반에는  기나긴 여정에서 당연히  번은 만날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다음을 기약했지만, 다음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 모두는 다리 길이가 다르다. 걷는 속도도 다르며 체력도, 상황도 다르다. 그렇기에  다른 상황 속에서 정말 우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순간, 선물 같은  순간을 후회 없이 임한다면 아쉬움이 더 이상 부정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현재 상황에서 최선을 하면서부터,  선택으로 만들어진 결과  이상 걱정과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되는 내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아빠를 이렇게나 그리워했던 그 근원적인 이유가 그 당시, 그 순간에 나의 감정과 행동을 다음으로 미뤄왔다는 점에 기인했다고 깨닫는다. 전하지 못한 아쉬움이 미안함으로, 미안함이 후회와 슬픔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이제야 법륜 스님이 슬픔에 눈을 가려 현재 내 주위 사람들을 놓치지 말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22. 05. 30 수비리에서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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