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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멜리에 Mar 21. 2019

#4. 동쪽으로 가는 길

[2017 낭만제주] 동일주 노선의 느낌 그리고 성산이 내게 주는  힘



동일주 노선에 몸을 맡기고


조용하고 편안했던 3일 동안의 남쪽 생활과 안녕하고 동쪽으로 떠나는 날이다. 

남쪽에 온 첫날부터 떠나기 전 어제까지 계속 흐리고 비만 내렸는데, 떠나는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여름보다 더욱 뜨거운 날씨다.


동일주 노선을 타고 동쪽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버스를 기다리고 타는 일련의 시간 동안 관광지에는 느끼기 어려운 마을의 분위기도 경험할 수 있고, 달리는 차들에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이런저런 생각도 할 수 있는 것들이 참으로 좋다.

이십 분쯤 지났을까. 버스가 도착했고 가장 방해받지 않을 것만 같아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것들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남쪽에 머물며 혹여 내가 놓친 경관이 있는지 유심히 살피며 최대한 많은 것을 담고, 다음번에 오게 되면 가볼만한 내 스타일의 상점이 있는지 꼼꼼히 살피다 보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고, 기다렸다는 듯 드넓게 펼쳐진 파도가 보이며 그 위로 부서진 태양빛이 마구 쏟아지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한다. 


'아, 여기가 표선이구나.'

나의 첫 제주, 자신의 고향 표선 바다가 제주에서 으뜸이라고 자부하시던 나의 첫 직장상사께서 왜 그렇게 자신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눈 시리게 아름다운 곳이다. 


표선 바다의 감상에서 헤어 나올 때쯤이면 탁 트인 대지에 슬래트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곳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제야 내가 동쪽 '성산'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제주'도 위치에 따라 가지고 있는 느낌이 다른 것 같다. 상대적으로 바람이 적고 날씨가 따뜻한 남쪽이 조용하고 편안한 느낌이라면, 드넓은 벌판이 많고 바람이 센 탓에 나에게 동쪽의 느낌은 거칠고 투박하다. 

또한 기후와 토양의 차이로 남쪽은 주로 감귤농사를 짓고, 동쪽은 당근밭이 많다(당근은 화산암이 풍화된 흑토에서 잘 자라기 때문).


작은 섬 하나에 위치별로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그게 제주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나만의 '그곳'들에 대하여


'섭지코지'는 제주 동쪽에 위치한 바다에 돌출되어 있는 육지고, '섭지'는 '재사', 즉'재주가 많은 남자'라는 의미이고, '코지'는 '곶'의 제주방언이라고 한다(인터넷 검색엔진 활용). 결국 붙여서 해석하면 '재주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는 의미인 것 같다.


섭지코지 주차장에 도착하여 검푸른 바다를 끼고 푸른 절벽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염분과 땀으로 범벅되어 온 몸이 끈적였지만, 이 마저도 세찬 바닷바람에 씻겨 내려갔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멀리 하얀 등대가 보이는데, 그 등대를 따라 걷다 보면 정상에 이른다. 

탁 트인 주위와 파도, 초록의 잔디들, 방목되어있는 말의 움직임이 한데 어우러져 내가 '제주'-그것도 동쪽 성산-에 와있다는 것을 다시금 실감하게 된다. 마주 보이는 성산일출봉의 장엄한 분위기에 아무 감탄사도 연발할 수 없을 정도로 대자연 앞에 괜히 숙연해지는 순간이다.


정상 한 켠에는 일본의 유명한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Ando Tadao)'가 설계한 '지니어스로사이(Genius Roci, 현재는 Yumin Art Nouveau Collection)'라는 노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건축물이 있는데, 최대한 자연을 담으려는 그의 철학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비록 이번 여행에서는 시간상 내부를 구경하지는 못하였지만 내년에 다시 오리라.


지니어스로사이의 외관을 구경하고 정상에 있는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성산일출봉과 맞닿아 있는 섭지코지 뒷 길로 걸어 내려왔다.


관광객들과 차로 붐빌 것 같아 선택한 이 길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한적한 길이였고(나중에 알고 보니 올레 2코스였다), 오로지 방목된 말들만이 유유자적하고 있었다. 포장도 잘 되지 않은 흙길 위에서 광치기 해변의 모습과 성산일출봉을 마주하며 걷고 있는 기분이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세포 하나하나에 전기 충격이라도 가한 듯-짜릿하고 황홀했다. 게다가 사람들로 붐비지 않아 대자연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로운 기분이랄까.

'좋은 것은 좀 더 멀리 떨어져서 봐야 좋다.'는 구절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온 뒤, 이른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숙소에서 성산일출봉이 정면으로 보이는 덕분에 벤치에 앉아 이번 여행 최고로 낭만적인 저녁-컵라면과 삼각김밥-도 즐길 수 있었다. 음식을 먹자마자 소나기가 무섭게 내리기 시작한 탓에, 나는 숙소에 누워 남은 영화를 보고 남편은 읽다 만 책을 보기 시작했다. 

제주 여행의 다섯 번째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매우 만족스러웠던 우리의 점심



섭지코지 정상, 지니어스로사이 앞에서 한 컷



이번 여행의 숨은보물찾기, 성산일출봉과 마주할 수 있는 섭지코지 뒷 길(올레 2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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