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이푸르는 메인 루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패스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나 역시 우다이푸르보다 디유를 가기 위해한 경유지로 우다이푸르로 내려간 케이스였다. 하지만 별 기대 없이 가서 그런지 우다이푸르는 정말 예뻤다. 호수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길게 마을이 감싸고 있고 양 쪽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가 호수를 가로지른다. 한낮에 하얗게 빛나는 호수도 예쁘지만 해가 질 무렵 붉은색으로 빛나는 호수는 정말 예쁘다. 호수만큼이나 예쁜 시티 팰리스도 우다이푸르를 빛내는데 한몫 단단히 한다. 호수 가운데에는 아주 작은 하얀 성의 호텔이 있는데 배를 타고 갈 수 있다고는 들었지만, 하루 숙박비용이 비싸다는 소리를 들어 가보지는 못했다.
우다이푸르를 방문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닭볶음탕 또는 백숙을 먹기 위해서다. 인도 음식이 잘 맞지 않는 여행자들이 꽤 많기 때문에, 먼길을 와서라도 닭볶음탕을 먹고 가는 여행자들이 꽤 많은 편이다. 나 역시 들른 김에 매콤한 닭볶음탕을 먹기 위해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인도의 닭볶음탕은 살아있는 닭을 잡고 시작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래 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시간은 기본이요, 두세 시간을 기다려 먹었다는 카더라 정보도 왕왕 들어온 터였다. 결론은 입을 모아 닭볶음탕은 아주 오래 걸린다였다.
역시나 우리도 2시간을 기다렸는데 기다려보지 않은 자들은 도대체 왜 먹냐고 할 수 있지만, 기다려보시라.
한 시간까지는 그래, 오래 걸린댔으니 곧 나오겠지,
이거 먹으러 여기까지 왔는데 좀만 더 기다려보자 이지만,
한 시간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이제 기다린 게 아까워서 기다리게 된다.
(게다가 우리는 닭볶음탕을 먹기 위해 우다이푸르로 내려온 여행자가 아닌가!!)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할 무렵 닭볶음탕이 나왔는데 헐, 이게 웬걸.
새빨갛고 영롱하게 빛나야 할 닭볶음탕이 허여멀건한 백숙으로 나온 게 아닌가. 장시간의 이동을 하자마자 오로지 닭볶음탕 하나만을 위해 짐만 던져두고 레스토랑으로 직진했는데 이게 뭐람. 극대노해서 마구 따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주문이 잘못 나왔다고 그럴 줄 알았는데 닭볶음탕이 맞다며 우기는 것이 아닌가. 이게 무슨 닭볶음탕이냐. 닭볶음탕은 빨갛고 아주 맵다고 설명하며 옆에 있는 백숙이랑 다를 게 뭐냐고 따졌더니, 백숙은 통째로 삶아 끓인 것이고, 닭볶음탕은 부위마다 조각을 내서 끓인 것이란다. 이 무슨 개소리인가. 말도 안 되는 답변에 맥이 탁 빠지며 두 시간 넘게 기다린 공복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더 이상 따질 힘도 없었다. 세상에 인도인을 이길 부류는 이집트인들 밖에 없다.
중학교 1학년 때였나.. 잦은 코피와 빈혈로 병원에 갔는데, 영양실조 판정을 받았다. 지금이야 영양소 중 하나가 부족하면 영양실조로 나오니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는 못 먹어서 걸리는 게 영양실조라고 생각해서 엄마가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워낙에 편식이 심했던 때라 의사는 임시 처방으로 분유를 먹게 했었는데, 그때 퍼먹은 분유에 맛을 들여 분유 맛이 나는 음식은 다 좋아하는 입맛으로 컸다.예를 들면 커피 자판기에 있는 우유라던가, 크림치즈 같은 것들...
(내 동생은 내가 분유를 퍼 먹는 모습만 보고, 정신과 상담을 받아봐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고 )
시티 팰리스를 구경하고 어슬렁어슬렁 시내 구경을 하는데 커다란 솥에 뽀얀 우유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그 냄새를 맡고 분유맛 덕후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우유 파는 소년에게 얼마냐고 물어보니 단돈 이백 원. 우유 파는 소년의 우유는 세계 최강 우주 최고의 맛이었다.. 떡볶이도 먼지 먹고 오래 끓인 길거리 떡볶이가 젤 맛있는 것처럼, 우유도 설탕 넣고 먼지 먹고 오래오래 보글보글 끓인 우유가 최고 맛있었다.
소년의 우유를 처음 맛보고 우다이푸르에 머무는 동안 매일 아침저녁으로 2컵씩은 마시러 갔다.
5년 뒤에 다시 인도에 갔을 때는 디유를 들리기 위해서도, 닭볶음탕을 먹기 위함도 아닌,
그 보글보글 오래오래 뭉근하게 끓인 우유 한 컵을 마시기 위해 일행들과도 헤어져 우다이푸르로 향했다.
멀리서 까맣고 큰 솥 위로 하얗게 끓어오르는 우유를 봤을 때의 그 기쁨이란.
우유를 팔던 그 어린 소년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새 의젓한 청년이 되어.
해 질 무렵 호수 쪽으로 내려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선셋을 보는 걸 추천한다.
음식은 큰 기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