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by mercioon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오토바이를 빌려 돌아다녀야 되는 도시들이 생기는데 그 첫 번째 도시가 바로 디유였고, 오토바이 악연의 역사에 첫 스타트를 끊은 곳이기도 했다. 디유는 아주 작은 섬으로 딱히 교통수단이라고 할 게 없어서 오토바이는 필수였다. 자전거만 탈 줄 알면 스쿠터도 금방 배울 수 있다기에, 겁도 없이 스쿠터를 한대 빌렸다.

근데 여긴 어디? 응. 인도

인도에서 그것도 작은 섬인 디유에 숙소에서 빌려주는 스쿠터는 타기 전부터 문제가 많았다. 스쿠터는 힘없이 푸드덕 거리며 나오는 방귀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질 않았다. 이미 페이는 다 한 상태이고, 스쿠터는 더 없으니 그냥 오토바이를 타라며 빌려주었다. 숙소 주인에게 타는 방법을 간단하게 배우는데 운동 신경이 워낙에 없는지라, 손목을 움직여 손잡이를 돌리면 오토바이만 슝~~~ 하고 앞으로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낡은 오토바이여서 속도가 나지 않는 게 초보인 나에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털털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메인 거리를 나와 인적이 드문 해변 쪽으로 향했다.쨍한 햇빛을 받아 새파랗게 빛나는 바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순간 차가 하나도 없는 좁은 직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렸다. 뜨거운 햇빛에 정수리는 뜨거운데 속도가 나는 바람에 얼굴은 시원했다.옆으로는 나를 따라 달리는 바다가 쉴 새 없이 반짝반짝 빛을 내며 쫓아왔다. 짙은 회색의 콘크리트 도로 위에는 바다와 야자수, 그리고 나밖에 없었다. 그 황홀한 순간은 작은 섬 디유를 크게 돌고, 마을에 다시 들어설 때 쯤 빠르게 끝이 났다.이 놈의 오토바이가 또 고장이 난 것이다.

앞에 사람이 걸어내려가고 있는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사람을 칠 순 없어서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으면서 그대로 미끄러져 넘어졌다. 다행히 뼈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거울 조각이 여기저기 박히고,

바지가 찢어지며 무릎을 심하게 다쳤다.그냥 보통의 찰과상 정도로 생각하고 치료를 소홀히 했다가 2주 내내 무릎에 고름을 줄줄 흘리며 다녀야 했다.



다치고 숙소로 돌아왔을때, 눈물 자욱 가득히 엉망 진창 그지꼴의 나를 보고 일행이 불쌍하다며 망고를 깍아주었다.

그때 남긴 일기 한줄

살은 거의 없고, 씨만 대따 크다. (2006.03.16)

diu오토바이2.jpg

그 다음부터는 지레 겁을 먹어서 다치기 시작했다. 태국에는 다양한 인종의 오토바이 초보가 모여드는 마을 빠이가 있다. 북부 지역에 있는 도시 치앙마이에서 구불구불하기로 악명 높은 도로를 4,5시간 달리면 나오는 작은 마을인데, 디유처럼 마을이 워낙에 작다 보니 오토바이 렌트는 필수이다. 빠이의 메인 거리에는 오토바이 렌트를 할 수 있는 가장 큰 렌탈 샵 아야 서비스가 있는데, 아야서비스 앞에서는 하루 한번 이상 나 같은 생초보들이 오토바이 사고를 내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나 역시 아야서비스에서 오토바이를 빌렸는데 인도에서 탔던 오토바이들과는 성능 자체가 달라서 제대로 타보기도 전에 자질구레하게 다치거나, 산길을 달리다 산등성이에 처박히기 일쑤였다.그 후로 오토바이와는 인연이 없구나 생각하고 운전을 그만두었는데 악연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인도 북부 지역인 라다크에 있을 때였다. 레 시내 주변의 곰파들을 돌려면 오토바이가 필요했는데, 오토바이를 못 탄다고 하니 여행 중 만난 동생이 태워주겠다고 했다. 안전 운전하나는 자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자신만만해해서 뒤에 탔는데 곰파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후진을 하다가 뚜껑이 없는 하수구에 빠져 뒷자리에 타고 있던 나만 하수구에 빠져버렸다. 다행이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그 뒤로도 숙소가 코앞이라 뒷자리에 탔다가 좁은 골목길에 발가락이 갈려 새끼발톱이 통째로 날아가는 등의 작은 사고들이 계속 생겼다. 여러 일련의 사고들 이후로 오토바이라면 뒷자리에도 잘 타지 않게 되었다.

그러고 몇 년 후 오토바이가 없으면 정말 힘든 발리 우붓에서 한 달 살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습하고 더운 우붓의 땡볕에도 불구하고 요가를 갈 때도,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할 때도, 내가 좋아하는 라이스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의 노을을 보러 갈 때도 꿋꿋이 걸어 돌아다녔었다. 그렇게 비가 오던 어느 날. 숙소에서 나와 길을 건너는데, 내리는 비에 시야가 가려 못 봤는지 오토바이를 타고 오던 우붓 소녀가 뒤에서 나를 쳤다. 작은 골목을 건너다 졸지에 날아간 건 난데 여자아이는 여행객을 쳤다는 사실에 겁을 먹었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피해자에 다친 사람도 나이지만 십 대 어린 소녀에게 병원비를 청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를 달래고 가던 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와 누웠다. 그렇게 이틀을 내리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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