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많은 나라 인도. 그중에서도 현지인에 여행객들까지 죄다 몰리는... 연착이 일상인 바라나시 정션 역.
그나마 우리는 애교로 3시간 정도 연착되어 새벽 1시에 기차에 오를 수 있었다. 새벽의 차가우면서도 텁텁한 바람을 맞으며, 침낭을 여미느라 이리저리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아침. 고락뿌르 역에 도착했다. 가방을 내려놓을 새도 없이 역 앞을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타고 또 3시간 정도를 더 달려 도착한 곳은 네팔 국경. 출국 심사와 입국 심사를 간단하게 마치고 또다시 룸비니로 향하는 닭장 같은 버스에 올랐다. 바라나시를 거쳐 네팔로 넘어오는 건 벌써 3번째이지만, 룸비니를 들리는 건 처음이다.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탄 탓에 버스는 이미 만원. 앉을자리는커녕 9호선 퇴근길처럼 이리저리 흔들려대며 이동하는 중이다.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햇빛에 부옇게 일어나는 모래 먼지가 끈적하게 흐르는 땀에 달라붙었다. 이쯤 되면 왜 뫼르소가 쏟아지는 햇빛 때문에 사람을 쏴 죽였는지 이해가 간다. 두 시간 정도를 먼지바람 버스를 타고 달려 룸비니에 내렸을 땐 해가 가장 뜨거운 3시. 이미 티셔츠와 가방은 땀으로 가득 젖었고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리 지치고 화가 나도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피곤한 몸을 누이기 위해 대성석가사 방향으로 터덜 터덜 걸어가는데 사이클 릭샤꾼이 다가왔다. 분명 지도로 봤을 때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은데 300루피(7500원)를 불렀다. 아.. 오늘따라 겹치는 악의 숫자 3. 우리는 필사적으로 흥정을 시도했지만 얄미운 인도인은 우리의 상태를 보고 이죽거리며 단 50루피도 깎아주지 않았다. 안 그래도 화가 많이 나 있던 우리들은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랬으면 안 됐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었어야 했다
안 그래도 푸쉬카르에서 한바탕 쇼핑을 한 탓에 짐도 무거운데, 햇빛은 열정적으로! 알제의 햇빛보다 열정적으로 쏟아부어댔다. (알제는 가보지 못했지만 확신할 수 있다!) 아 왜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에서 이런 개 고행을 해야 되는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구정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몇 걸음 가다 주저앉고, 또 몇 걸음 가다 주저앉기를 반복하다 보니, 얼마 남지 않은 물도 똑 떨어져 버렸다. 지금이라도 당장 300루피를 주고 그 이죽거리는 릭샤꾼의 얼굴을 보고 싶은데, 앞이고 뒤고 사람이라곤 우리 둘이 전부. 있지도 않은 물을 외치며 패잔병처럼 몇 걸음 기다시피 가다 앉아 쉬고, 또 조금 기어가다를 반복해댔다. 나중엔 다리에 힘이 풀려 가방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 지듯 도랑으로 빠졌다. 정말 울고 싶은 하루다.
이글거리던 해가 좀 잦아드는 5시가 다 되어서야 우리는 절에 도착했다.
차가운 물에 샤워를 하고, 친구는 기절했다. 나를 따라 처음으로 배낭여행을 온 친구였다. 그녀의 지친 뒤태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게 무슨 개고생이니...
몸의 열은 떨어졌지만 타는 목마름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슈퍼는 숙소에서 15분은 더 걸어야 했다. 별거 아닌 거리가 지옥 같은 느낌이다. 이미 3시부터 물을 마시지 못했다. 슈퍼에 도착하자마자 2리터짜리 물을 사서 단숨에 들이켰다. 친구는 생명수를 마시고 이내 곯아떨어지고 나는 해가 지기 전, 피곤한 몸을 일으켜 노을이 지는 룸비니의 절들을 천천히 구경하며 산책을 했다. 사방이 소음으로 가득하던 인도에서 넘어와 바람소리에 흔들리는 억새 소리만 들리니 세상 마음이 편안해진다.
처음 대성석가사를 봤을 때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아직 다 지어지지 않았다지만 절 입구 계단 시멘트 밖으로 튀어나온 철골 구조물은 절이라는 느낌보다는 석재 공판장에 와있는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대성석가사의 백미는 저녁 예불 때 느낄 수 있다. 널따란 내부를 가득 채우는 등과 촛불이 낮에 차갑게만 느껴지던 시멘트의 벽을 따뜻한 색으로 바꿔놓았기도 했지만,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은 스님의 목탁 소리였다. 목조로 된 절에서 듣던 목탁 소리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소리였다. 석조로 된 넓은 내부에서 목탁 소리가 한번 울려 퍼지면, 아주 깊은 산속의 샘에 물 한 방울이 크게 파동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물방울의 파동을 따라 나의 의식도 같이 울리는 느낌이다.
돌로 만들어진 벽을 목탁 소리로 사방을 깨우는 새벽.
묵직하게 울리는 그 소리가 바닥에 닿을 즈음엔 맑은 물방울 소리를 내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 속의 샘으로 안내한다.
새벽바람에 흔들리는 반딧불에 의지해 따라가다 보면
점점 희미해지며 멀어져 가는 하나의 점이 되어
나의 우주로 까맣게 젖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