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열네 살, 엄마 아빠가 이혼한 날
나는 이혼가정의 자녀다. 우리 엄마, 아빠는 내가 중학교 1학년인 어느 날 이혼했다.
엄마, 아빠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고 했을 때, 나는 울지 않았다. 어떠한 감정도 없었다.
그냥, 조용히 혼자 생각했다.
'더 이상은 지지고 볶는 모습 안 봐도 되겠구나...'
나는 일곱 살 때의 어떤 장면이 기억난다. 그 장면이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의 가장 첫 장면일 것이다. 엄마, 아빠는 시장에서 장사를 했다. 가게에는 넓은 방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네 식구가 함께 살았다. 집이었지만 가게였기에 철로 된 셔터가 있었다. 장사가 끝나고 그 셔터가 내려가면 가게는 네 식구의 보금자리가 됐다. 그 보금자리에서 아빠와 엄마는 싸웠다. 셔터가 내린 우리의 보금자리에서 아빠는 엄마를 때렸고 엄마는 소리쳤다. 아빠는 왜 엄마를 때렸는지 둘은 왜 싸우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저 나와 오빠는 겁에 질려 그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엄마는 아빠에게 맞는 와중에 소리쳤다.
"얼른 셔터 문 열어!!!!"
굳게 닫힌 셔터 때문에 가게, 아니 집 안에서 꼼짝없이 맞고 있는 엄마.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힘겹게 그 셔터를 올리려고 했지만 일곱 살의 어린 내가 무슨 힘이 있으랴. 셔터 문을 올릴 수 없었다. 어두컴컴한 그 공간. 울부짖는 엄마. 겁에 질린 우리 남매. 내 인생에서 가족이란 기억은 그랬다.
그때부터 싸우기 시작한 엄마, 아빠는, 아니 이미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싸웠다는 엄마, 아빠는 싸움에 싸움을 거듭하다 내 나이 열네 살에 이혼을 했다.
부모의 이혼에 대해 우리 남매는 엄마, 아빠에게 어떤 자세한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엄마, 아빠가 이런 점이 안 맞아서 이혼을 했다, 이런 설명도 없었다. 우리 남매는 그저 늘 한다고 했던 그 이혼을 이제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저렇게 싸울 바엔 차라리 헤어지는 게 좋겠다는 확신을 가졌으니까.
이혼한 그날부터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렇게 우리 남매는 아빠와 원래 살던 집에서 살게 되었다. 이혼하고 며칠이 지나고 늦은 밤이었다. 엄마는 술에 취해 집으로 전화를 했다. 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ㅇㅇ이니?"
"응."
"야, 너는 어떻게 엄마, 아빠가 이혼을 했는데, 엄마가 집에 안 들어오는데 전화 한 통이 없어?!"
"......"
우리 딸 잘 지내냐는 말은 없었다. 이혼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엄마는 대뜸 내게 화를 낼 뿐이었다.
"나쁜 년. 너 때문에 이혼한 거야. 너 때문에!!"
분풀이하듯 엄마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기억에 엄마는 늘 내가 아빠를 닮았다고 미워했으니까. 엄마가 불쌍하거나 안쓰럽지도 않았다.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엄마는 나 때문에 이혼했다는 걸까.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억울할 뿐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는 그걸 따질 힘도 없었다.
#이혼가정 #이혼부부 #이혼자녀 #이혼부모 #이혼 #이혼이야기 #어린시절 #마음치유 #부모자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