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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부니 Nov 14. 2024

매일 경찰차가 오는 우리 집

하나님, 제발 엄마 아빠가 이혼하게 해 주세요

초등학교 6학년이던 열세 살 때의 일이다. 나는 처음으로 학급 반장이 되었다. 난 반장으로 뽑히고 난 뒤 감격에 겨워 친구들 앞에서 눈물을 주룩 흘렸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심장이 두근두근하고 떨린다. 난 어릴 때부터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은 아이였다. 


반장을 하며 친구들과도 두루 잘 어울렸다. 친한 친구들이 모두 한 아파트에 살았기에 학교가 끝나면 같이 놀았다. 서로 각자의 집에 놀러 가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했다. 부모님끼리도 서로 인사하며 지냈다. 학교 생활도 친구관계도 모두 좋았지만 늘 날 긴장되게 만드는 건 다름 아닌 집이었다. 누구보다도 안전해야 할 집에서 매일 밤 엄마, 아빠는 전쟁을 치렀다. 




나도 결혼을 하고 살아보니 부부 싸움은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정말 사소한 것 때문에 다툼이 오가기도 하고 서로에게 상처되는 말을 주고받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 아빠의 싸움은 흔하게 말하는 부부 싸움의 정도가 아니었다. 드라마, 영화에서 나오는 것보다도 심했다. 늘 싸움의 끝은 욕설, 폭행이었다. 한 명은 병원에 가야 했고 둘 모두가 병원에 간 적도 있었다. 


엄마, 아빠는 서로를 사랑해서 결혼한 것 같진 않았다. 어린 나이 임신과 동시에 결혼을 했다. 엄마 말에 의하면 내가 어렸을 땐 아빠가 술에 취하면 엄마를 때렸고 엄마는 그저 맞고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내가 열 살이 된 이후에는 엄마도 반격에 나서 아빠와 몸싸움을 했다. 엄마의 얼굴엔 멍자국이, 아빠의 등엔 손톱자국이 가득했다. 


아빠의 사업이 잘 되면서 아빠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다. 아빠는 돈 버는 것을 최고로 삼았다. 가정주부였던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과 어울렸다. 우리 집에서 화투를 치거나 다른 아줌마 집에서 화투를 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가끔 엄마를 따라 화투방에 갔다. 좁디좁은 방구석에 삼삼오오 모여 '고'를 외치는 여자들. 어릴 때는 왜 저렇게 어른들이 화투놀이를 할까 의아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와 아줌마들은 그 안에서 나름의 해방감을 맛본 거 같았다. 


엄마가 화투 치는 아빠는 못마땅해했다. 아빠는 엄마에게는 다정하지 못했지만 자식들은 살뜰히 챙겼다. 엄마가 아이들 밥을 늦게 챙겨주고 집에 없는 날엔 어김없이 싸움이 났다. 아빠는 화투방을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고 쫓아가서 훼방을 놓기도 했다. 엄마는 매일 술자리를 갖고 여자를 만나는 아빠를 탓했다. 엄마, 아빠는 싸움의 원인을 서로 상대방에게서 찾으며 끊임없이 싸웠다. 




매일 전쟁이 벌어지는 전쟁터인 우리 집. 어떤 전쟁이든 최대 피해자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 중 누구에게 싸움의 원인이 있는지가 중요할까? 전혀 중요하지 않다. 겁이 많은 난 싸움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처음엔 오빠와 함께 엄마, 아빠의 싸움을 뜯어말렸다. 제발 그만하라고 울부짖었지만 소용없었다. 몇 년째 계속되는 싸움에 오빠와 난 아예 방에 들어가 있었다. 무섭고 겁이 났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숨죽이며 싸움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어린 동생은 다행히도 잠을 자고 있었다. 오빠와 나도 울다가 잠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형제가 있었던 게 참 다행이었다. "죽여봐, 죽여" 소리를 함께 견뎌낼 수 있었으니까. 


내가 가장 견딜 수 없었던 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우리 집 아래층엔 같은 반 남자아이가 살았다. 그리고 아래 아래층엔 친한 여자 아이가 살았다. 아랫집은 쿵쾅거리는 싸움 소리를 듣고 늘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 이웃분들도 얼마나 괴로웠을까. 모두가 잠잘 준비를 하는 칠흑 같은 밤에 경찰차 소리가 울렸다. 우리 아파트 라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 집 때문에 경찰이 왔다는 것을. 


너무 싫었다. 경찰이 우리 집에 찾아오는 것도, 내 친구들이 우리 엄마, 아빠가 싸운다는 걸 안다는 것도, 경찰이 와도 서로가 잘났다며 싸움을 멈추지 않는 부모도, 거실 바닥에 펼쳐진 싸움의 흔적들도... 엄마, 아빠가 헤어진다면, 이혼한다면, 제발 이혼만 해준다면 이 꼴은 안 보고 살 것 같았다. 친구들에게 쪽팔리진 않을 거 같았다. 나는 뭐든 잘하니까, 어차피 엄마, 아빠 없어도 혼자 잘하니까 제발 엄마, 아빠가 따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 저들이 나의 부모인 건가. 저 이기적인 사람이 내 부모라는 게 싫었다. 부끄러웠다. 


'제발 엄마, 아빠가 이혼하게 해 주세요. 제발.'


내 소원을 하나님이 들었을까? 엄마, 아빠는 얼마 뒤 공식적으로 이혼을 했다. 하지만 이혼이 끝은 아니었다. 엄마, 아빠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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