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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부니 Nov 21. 2024

부모의 이혼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학교 갔다 오니 집에 있던 물건이 다 사라졌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 엄마, 아빠가 헤어지고 우리 집은 계속 무너져 내렸다. 아빠는 엄마와 이혼 후 홧김에 새엄마를 데리고 왔다. 어쩌면 계획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 말에 따르면 이미 이혼 전에 아빠가 만나던 여자다. 캄캄한 저녁, 아빠는 예고도 없이 새엄마라는 사람과 함께 집에 들어왔다. 새엄마라는 사람은 우리의 식탁에 음식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빠는 어떠한 말도 없었다. '새엄마'라는 설명도 없었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기 마음대로 하고, 어떤 설명도 이유도 없는 사람. 


우리 남매는 어떠한 인사도, 대꾸도 하지 않고 조용한 식탁에서 밥만 먹었다. 목에 넘기는 밥알이 하나하나 다 느껴질 정도로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겨우 밥 한 공기를 다 먹고 나는 내방으로, 오빠는 오빠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내방 침대에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다음날 아빠는 술을 잔뜩 마시고 내 방으로 왔다. 괜히 시비를 걸고 괜히 화를 냈다. 나는 안다. 아빠가 왜 이유도 없이 내 방에 들어와 화를 내는지를. 어제 그 데리고 온 새엄마에게 쌀쌀맞게 굴었기 때문이다. 그 화를 어린 내게 와서 내고 있었다. 


"아빠 마음대로 하세요." 


 말 한마디를 하고 이불 속에 들어갔다.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눈물이 터져 나와 잘 수도 없었다. 며칠간 그 새엄마라는 사람이 우리 집을 들락거렸다. 우리 남매는 밥 먹을 때만 나가 조용히 밥을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집에 왔다. 나는 방에 있어서 잘 알지 못했지만 우당탕탕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얼굴만 내민 채 상황을 보니 안방이 소란스러웠다. 엄마는 "여긴 내 방이니까 당장 나가라"며 새엄마라는 사람과 싸웠다. 얼마가 지났을까. 새엄마라는 사람은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어린 마음에 '우리 엄마가 이겼네'라는 생각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혼했으면 끝인데 대체 왜 저러는 걸까' 싶어 화가 솟구쳤다.




2020년 방영된 '부부의 세계'라는 드라마가 있다. 김희애와 박해준이 주인공으로 나온 '부부의 세계'는 남편의 바람으로 화목했던 가정이 어디까지 무너져 내리는지 너무 실감 나게 보여주었다. 부부가 이혼한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부부는 이혼 후에도 애증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부딪히고 만날 수밖에 없었다. 아들 '준영이'는 엄마, 아빠의 끝나지 않은 관계 속에 환멸감을 느껴 집을 나갔고 이후 집으로 돌아왔는지 안 왔는지는 열린 결말로 끝났다. 나는 준영이가 불쌍해 많이 울었다. 어릴 적 우리 남매는 '준영이'와 같았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온갖 못볼꼴을 다 보는 불쌍한 아이. 드라마는 허구가 아니다. 우리 집 현실이었다. 


그날 이후 새엄마라는 사람은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가 다시 들어온 것도 아니다. 아빠의 사업은 이혼과 동시에 도미노처럼 무너져갔다. 아빠는 사업을 다시 일으키려고 밤낮으로 돌아다녔다. 엄마는 막내 동생만 챙길 뿐 우리 남매를 신경 쓰진 않았다. 어수선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우리 남매가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할머니가 우리 집에 들어오면서 삼시세끼 밥을 먹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한창 사춘기인 중, 고등학생을 할머니가 케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는 집 나간 엄마라며 엄마 욕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남매는 각자의 방에 숨어 또 하루가 가길 바랄 뿐이었다.  


학교에 다녀온 어느 날, 현관문을 여니 할머니가 목놓아 울고 있었다. 어른이 저토록 꺼이꺼이 우는 건 처음 봤다. 빨간딱지가 붙어있던 물건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TV, 소파, 식탁, 냉장고, 침대, 옷장, 서랍장, 책상, 세탁기, 에어컨까지. 어느 하나 남아있지 않고 집 안이 텅텅 비었다. 냉장고에 있던 김치며 반찬, 냉동된 생선, 고기들이 주방 바닥에 내팽개쳐 있었다. 내 방바닥에는 내 옷이며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대책 없는 집에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집에서 난 그저 멍하니 울고 있는 할머니를 바라봤다. 그날은 무더운 7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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