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시어머니

남편과 시어머니를 만난 건 행운일까.

by 차부니

아이를 낳고 키우며 부모가 꼭 갖춰야 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사랑, 경제력, 책임감, 평정심, 한결같음. 모든 게 중요하지만 아이를 지키겠다는 책임감은 날이 갈수록 커진다. 뱃속의 아기를 출산하고 그 아기가 커서 어른이 될 때까지, 혹은 그 이후까지도 부모의 책임은 끝이 없다. 진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나부터 열까지 몸소 보여주고 가르쳐줘야 한다. 믿어주고 응원해줘야 한다. 그게 부모의 사명이다.


나의 부모는 아이들의 안위보다 본인을 위한 순간의 선택이 중요했고 본인의 감정이 중요했던 사람들이다. 늘 외로웠던 우리 형제. 마땅히 보고 배울 어른이 없었다. 어쩌면 뉴스나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일들이 집에서 벌어지는 걸 보고 자란 난, 절대 내 부모와 같은 부모가 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면서도 혹시나 나도 내 부모와 똑같을까 봐 마음 한편이 불안했다.




부모에 대한 미움, 배신감에 치를 떠는 내가 참 부모의 모습을 보고 배울 수 있도록 해준 건 시어머니였다. 어렵고 불편할 것만 같은 시어머니. 처음 만났을 때 얇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나를 반겨준 게 생각난다. 20분 만에 10첩 밥상을 차려 밥 먹으라고 밥상을 내미셨다. 나는 늘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되면 밖에 나가 밥을 사 먹기 바빴는데, 시어머니의 집밥은 정말 맛있었다. 진짜 엄마의 밥상이랄까.


결혼 후 시어머니는 이틀에 한번 꼴로 반찬을 챙겨 오셨다. 현관벨도 누르지 않고 현관문 앞에 반찬만 쌓아두고 그냥 가셨다. 일하는 며느리, 밥 걱정 말고 편하게 일하라고 국이고 밑반찬이고 늘 다르게 만들었다. 우리 부부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반찬을 택배처럼 받아먹었다. 연락이라도 하고 집에 들어오시지 그러셨냐 물어도 “줄 것만 주고 가면 되지!” 답하신다. 생색이라고는 낼 줄도 모르는 분.


"엄마는 원래 자식들한테 저러셔."


늘 받아본 남편의 여유. 돌아서면 감사했지만 난 한 번도 그런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처음엔 어색하고 불편했다. 내 아빠는 늘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면서도 자랑을 하고 생색을 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그냥 해주고 싶어서 해주는 것뿐이었다.




첫아기를 낳자마자 병원으로 달려온 것도 시부모님이었다. 조리원에 나온 후 미역국을 빠짐없이 챙겨준 것도 시어머니다. 아빠랑 새엄마가 "우족 끓여 먹으라"라고 생 우족을 들고 왔을 때도 그 우족을 챙겨 들고 집으로 갔다 다시 고아온 것도 시어머니였다. 속으로는 어떤 마음이실지 모르겠지만 시어머니는 나를 편견 없이 보듬어주시고 늘 챙겨주셨다.


한 달 전 내 생일, 내 통장엔 시어머니 성함으로 10만 원이 입금되었다. 십몇년이 넘는 결혼 기간. 어머니는 매년 내 생일 때마다 10만 원을 챙겨주셨다. 생일 전에 미리 만날 일이 있었다면 '축하한다 며느리'라고 쓴 봉투에 담아 건네주셨고, 만날 일이 없다면 통장으로 보내주셨다. 남편 생일은 패스. 여든이 다 되어가시지만 며느리 생일을 잊는 법은 없다.


가까운 곳에 살지 않기에 자주는 못 뵙지만 가끔 만나게 되면 라면부터 과자, 사이다, 맥주, 각종 과일, 파김치, 배추김치, 밑반찬, 다진 마늘, 고춧가루, 사골국, 한우, 삼겹살 등. 우리 집에 필요한 식재료를 다 챙겨두신다. 우리 차 트렁크에 실어 보내고 나서도 "아이고 장조림이랑 대파를 빼먹고 안 보냈네! 내 정신 좀 봐라"하며 아쉬워하신다. 며느리 힘들까 봐 명절, 제사도 모두 없애버렸다. 차례상도 늘 자식들 오기 전에 혼자 다 만들어두시면서 뭐가 힘들다고 그러실까. 나 죽기 전에 내 손으로 없애둬야 편하시단다.


"여보는 좋겠다. 어머니의 저런 사랑을 어릴 때부터 받았을 거 아냐. 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데."


난 시어머니가 엄마인 남편이 괜히 부러워 투덜거린다. 시어머니를 보며 나도 저런 엄마가 되어야겠다, 생각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내 인생에서 남편을 만난 것도 행운인데 1+1으로 시어머니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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