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친정은 가지 않습니다

이혼한 부모집 안 가는 게 마음 편합니다

by 차부니

설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민족 대명절 설날. 지인들은 본가에 가기 위해 기차표를 예매한다고 한다. 올해 설은 임시공휴일까지 만들어져서 더욱 여유로운 설날이라는 뉴스도 나온다. 설날을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는 가족들도 많을 것이다.


난 명절을 기다리지 않는다. 명절을 이유로 친정에 안 간지는 한참 됐다. 내 속을 모르는 남들은 내게 묻는다.


“명절이 이렇게 긴데 왜 친정에 안 가? 친정 가서 좀 쉬고 오지.”


결혼하고 몇 해는 친정에 가긴 했다. 시댁에서 차례를 지내고 출발하면 길게는 9시간도 걸렸다. 그렇게 고생해서 친정에 가도 마음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다. 어느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어느 집으로 가도 내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엄마, 아빠 모두 함께 사는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자식을 마음 넓게 품지 못했다.


“할머니집 넓으니까 할머니집에서 편하게 지내고 내일 점심 먹으러 가자 “는 아빠. 그나마 아빠 마음 편한 게 할머니집이니 할머니에게 책임을 넘긴다.


내 마음이 편한 곳이 할머니집이긴 해도 허리 굽은 할머니집에서 내가 할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것도 남편과 아이와 함께라면 더욱 지내기 불편했다. 이후 엄마랑도 밥 먹고, 아빠랑도 밥 먹고, 또 할머니도 챙겨야 하고… 남편은 할머니까지 세 집을 인사하고 챙겨야 했다. 명절을 앞두고는 머리가 아팠다. 가고는 싶은 데 가기는 싫은 아리송한 마음. 늘 가고 싶은 마음에 가도 후회해서 돌아온 곳이 친정이었다.




부모에게 속 마음을 쏟아내고 내가 미련했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는 명절에 가지 않았다. 물론 생신에도 어버이날에도 가지 않았다. 남편이 선물을 보낼 뿐이었다.


안 가니까 마음도 몸도 편하다. 시댁에 하루 갔다 오고 긴 연휴 동안 아이들과 남편과 시간 보내고 맛있는 거 먹고 놀면 된다. 꼭 친정에 가야 한다는 마음을 버리니 미안함도 아쉬움도 없다. 따뜻하게 날 품어줄 친정이 아니라면 꼭 갈 필요가 없었는데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자식을 못 봐서 아쉬운 건 내가 아니라 부모다. “명절이 이렇게 긴데 왜 안 오냐”던 아빠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아빠는 작년쯤 내게 전화를 걸어와 갑자기 사과를 하셨다.


“아빠 택시 하는 친구가 요새 몇 날 며칠 일을 안 한대. 딸이 아기 낳아서 데리고 왔는데 손주가 너무 예뻐서 일하러 나가기 싫다고 안 나간다더라. 너도 애들 낳았을 때 편히 쉴 수 있는 친정이 있었으면 한 달도 있다 가고 할 텐데… 한 번도 그렇게 못하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와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친정에 오지 않겠지. 미안하다, 너랑 애들한테 다 미안하다. 아빠가 이렇게 못나게 살아서…“


정말 친정이 필요하던 시기는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였다. 하지만 이제 난 혼자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 이번 설날에도 친정에 가진 못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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