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엄마와는 다른 엄마로 성장하고 있다
엄마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아빠와 이혼 후 떠난 엄마 말이다. 엄마는 아빠와 이혼 후 자기 마음대로 살아왔다. 혼자 벌어 딱 혼자 먹고살았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자식들을 만나면 점심 사주고 용돈이나 줄 뿐, 금전적인 지원도, 심리적인 지원도 안 한 우리 엄마.
옛 어른들 말씀이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고 한다. 엄마가 보고 배운 것, 먹고 자란 것을 특히 가장 가까운 딸이 닮아가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 같다. 나는 내 엄마 같은 그런 인생을 닮고 싶진 않다. 한 인간, 여자로서도 물론이지만 엄마로서는 절대 절대 닮고 싶지 않다. 아이 둘을 낳고 어떤 순간에는 '내 엄마 같은가?' 싶어 나를 검열했다. 혹시 닮았을까 봐. 닮으면 안 되는 사람이니까.
어릴 때 엄마는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분풀이를 자식들한테 했던 것 같다. 특히 아빠의 사랑을 받은 딸인 나를 미워했다. 아빠를 닮아서 더 밉다고 했다. 난 생각난다. 엄마는 늘 딸인 내게 예쁘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하루는 엄마가 예쁜 청치마를 사 왔다. 난 그 청치마를 입어보고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런데 엄마는 그 치마를 나보고 벗으라고 하더니 친척 언니한테 입혔다. 나보다 더 키도 크고 날씬했던 언니. 아무래도 언니니까 더 그랬겠지. 엄마는 "이 치마는 언니가 입어야겠다. 언니가 피부도 하얗고 더 잘 어울린다"며 치마를 언니에게 줬다. 나는 울상이 되었다. 내 치마를,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치마를 왜 언니에게 줘야 하는지 서러웠다. 엄마는 단호했다.
"너한텐 안 어울리잖아."
난 안 어울리는 게 많았다. 생각해 보면 내가 뚱뚱하지도 않았고 못생기지도 않았고 피부가 그렇게 까맣지도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늘 그런 이유로 내가 안 어울리는 게 많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난 엄마 눈치를 많이 봤다. 순간순간 버럭 하는 엄마가 무서웠다. 밥을 먹다가 물컵을 넘어뜨리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내 머리 위로 엄마의 주먹 꿀밤이 날아왔다.
"으유. 왜 이렇게 점점 더 멍청해지는 거야. 수술하고 나서 머리까지 멍청해진 거 같아!"
교통사고로 신체 부위에 큰 수술을 받은 내게 엄마는 종종 나의 뇌까지 잘못된 게 아니냐고 말했다. 엄마가 내게 그런 말을 할 때면 정말 내 머리가 멍청해진 거 같았다.
"널 어릴 때 안고 나가면 다들 예쁘단 소릴 안 하더라. 근데 오빠가 딱 나타나면 너무 예쁘다고, 어쩜 이렇게 잘생겼냐고 그러는 거야~"
"네가 갑자기 생겼잖아. 아빠가 그때 널 지우라고 했었는데 겨우 낳은 거야. 널 낳을 때는 얼마나 힘들었는데! 오빠 낳을 땐 편하게 낳았는데 너는 얼마나 아프던지. 너 머리통이 넓적해서 그렇게 애를 먹었나 봐."
할 말 다 하고 솔직한 엄마. 솔직한 게 아니라 무례한 거였지. 난 밖에 나가선 뭐든 잘하는 아이였는데 집에 오면 엄마 때문에 주눅이 들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고작 이런 것뿐이라는 게 마음이 아팠다. 엄마의 뱃속에서 태어난 나, 가장 가까워야 할 엄마의 시선이 두려웠다. 이후 엄마는 아빠와 이혼해서 나가 살았으니 뜨뜻미지근한 엄마와 나의 관계는 그저 그렇게 끝났다. 어쩌면 감정적인 엄마 밑에서 계속 안 자란 게 다행이려나.
나도 그때의 엄마처럼 아이들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다짐했던 건 별 게 아니었다. 내 아이들을 사랑으로 안아주기, 외모로 평가하지 않기, 아이들을 비교하지 않고 사랑하기였다. 사십이 넘은 지금도 어린 시절 엄마가 했던 작은 행동들에 마음이 쓰린 걸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에게는 절대 그런 기억을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육아를 하며 아이들에게 윽박지르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런 순간 나는 알아차린다. 내가 지금 아이에게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것을, 무척이나 예민하다는 것을 말이다. 난 내 엄마 같은 사람 밑에서 십여 년을 자랐고 이후 떨어져 살았기에 더욱더 노력해야 하는 엄마다. 그 노력이라는 게 별거 없다. 편견 없는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봐주고, 눈 마주치면 안아주고 쓰다듬어 준다. 이 작은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고 따가운 시선을 보낼 이유가 전혀 없다. 그저 사랑으로 보듬어주면 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 뱃속으로 낳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내 아이들은 조용한 성품이라 밖이나 낯선 곳에선 얌전하다. 반면 집에 오면 까불고 춤추고 에너지가 폭발한다.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내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가족이 최고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고맙다. 속으로 나는 외친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나는 오늘도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딸은 엄마의 팔자를 닮지 않을 것이다. 딸은 딸대로 자신의 인생을 찾아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