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 눈치 안 보게 사랑 듬뿍 줘야
나는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엄마, 아빠의 이혼 후 엄마 아빠를 미워했지만 사랑받고 싶었다. 절대 닮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면서도 엄마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했다. 아빠에겐 살뜰한 큰딸이 되려 했고 집안에선 할머니도 잘 챙기고 동생도 잘 챙기는 따뜻한 손녀, 언니가 되려 했다. 집을 떠난 엄마를 증오하면서도 연락 없는 엄마가 가끔 그리웠다. 따뜻함이라고는 전혀 없는 집이었지만 “역시 네가 있어야 분위기가 산다”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애썼다. 엄마, 아빠는 저렇게 살았어도 참 잘 컸다는 말들. 그 말이 뭐라고 듣고 싶어 했을까. 내 마음속은 시커먼 구멍이 뚫려 공허함에 허덕이는데 겉으로만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다.
정서적으로 나를 품어준 적이 없는 부모. 온전히 미워하면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렇다고 온전히 사랑하지도 못했다. 싫고 밉고 지긋지긋한데 또 신경 쓰이는 마음. 내가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늘 혼란이었다. 세상의 첫 번째 울타리인 부모에게 안정적인 신뢰감을 받지 못했다.
‘나를 사랑하는 걸까?’ ‘부모가 이럴 수 있다고?’
순간순간 엄마, 아빠는 자식이 아닌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왔고, 부모의 안락함을 느껴보지 못한 난 허공을 헤매는 거 같았다. 그런 혼란이 지긋지긋하게 지속될 때마다 괴로운 건 나였다.
몸이 아플 때도, 회사일이 힘들 때도, 결혼을 할 때도, 아기를 낳고 키울 때도… 다른 집 같은 친정엄마, 친정아빠를 그리워했다. 나는 나를 더 사랑하지 못했다. 내가 싫으면 싫다고 떼를 쓰고 소리쳐도 됐고 화를 내도 괜찮았다. 허락도 없이 새엄마를 소개할 때도, 서로 대학교 졸업식 오겠다고 싸울 때도, “네 엄마는 대체 왜 그러냐”라고 험담할 때도, 결혼식 혼주석 문제로 싸울 때도 “이게 부모냐”라고 난리법석을 떨었어야 했다. 부모에게 온갖 정이 다 떨어져서 연을 끊었어야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그러지 못했다.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아껴야 하는지 모르는 법. 애어른은 그대로 어른아이가 되어버린다.
‘내가 싫은 건 하지 말자. 내 마음 불편한 건 하지 말자.‘
아이 둘의 엄마가 되어서야, 마흔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나의 부모는 변하지 않는다. 절대 변하지 못할 것이다. 그걸 깨달으니 마음이 시원했다. 부모가 다른 집 부모처럼 달라지길 바랐던 건 나의 과욕이었다. 체념을 하니 내 마음속 고요함이 찾아왔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나를 더 존중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부모. 나도 내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엄마, 아빠를 멀리하고 연락을 최소화하며 만남을 자제한다. “보고 싶다 “는 부모의 연락에 흔들리지 않고 내 마음이 내킬 때, 내가 부모를 보고 싶어 할 때만 보려 한다. 점점 더 부모와 멀어질 것이다. 내 마음이 편안해질 때까지, 내 마음이 허락하는 선까지 점점 더. 더 이상의 기대도 실망도 없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겐 나의 가족이 있다. 나만 사랑하는 남편과 나만 바라보는 아이들과 편안한 하루를 보내면 된다. 누구보다 잘 살고 있다. 잘 살면 된다.
부모의 이혼은 너무나 흔한 일이 되었다. 나는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에게 말하고 싶다. 애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모가 이혼한 건 자녀의 잘못이 아니다. 자녀가 눈치 볼 일도, 부모를 위로할 일도 아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의 일이다. 마음껏 부모를 미워해도 괜찮다. 증오가 사그라들 때까지 대놓고 미워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모보다 나를 더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어른아이가 되지 않는다. 부모가 달라지길 바라며 마음 아파하지 말자. 부모는 절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꼭 부모가 이혼을 해야 한다면 자녀에게 상처 주지 않았으면 한다. 자녀 앞에서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지 말고 자녀에게 애정만 주면 좋겠다. 제일 힘든 건 아이일 것이다. 그 작은 아이 마음에 불안감이 밀려오지 않게 사랑해줘야 한다. 이혼한 부모가 자녀와 함께 만나더라도 자녀가 눈치 보지 않게 해 주면 좋겠다. 입학식, 졸업식에도 같이 사진 찍고 자녀의 결혼식에도 같이 혼주석에 앉으면 좋겠다. 부모인 자신보다 자녀가 어떤 마음일지부터 헤아리는 마음 넓은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꼭 그래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