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해야 하는 삶

평가가 아닌 지속

by 메리


나는 자기 연민을 멈춘 지 꽤 되었다고 생각했다. 몇 년 전의 나는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며 자기혐오가 섞인 연민을 일삼던 사람이었지만, 요즘은 소소한 행복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물론 괴로운 날에는 짜증이 치밀거나 우울함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혹은 '참 불쌍하게 산다'는 식의 연민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감정에 사고를 위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불안과 슬픔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감정이 만들어내는 극단적인 사고를 진실이라 믿는 순간 우리의 이성은 오염되고 만다.


지난 몇 년간 나는 정신적으로 몹시 지쳐있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큰 성취는 없더라도, 요즘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 힘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 하고자 하는 사업에 대해 점차 감을 잡아간다는 소정의 결실, 그리고 꾸준히 글을 쓰며 삶을 채워간다는 충만감이 나를 버티게 한다. 나이에 비해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궤적에서 조금 벗어나 있을지라도, 과거보다 훨씬 안정된 정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에 그런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나는 과거에 문득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칙인 '현실태(entelecheia)'와 '가능태(dynamis)'를 떠올렸다. 현실태란 지금 이 순간의 나, 즉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행동이 누적된 상태다. 그것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출발점일 뿐이다. 가능태란 그 현실태가 반복되고 축적되며 열어가는 무수한 방향성이다. 가능태는 미래에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태가 멈추지 않고 이어질 때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나를 비난하거나 부정하는 순간, 가능태로 나아가는 속도는 늦춰진다. 반대로 현실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지속하기만 해도 가능태는 전혀 다른 속도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는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기로 했다. 자기 연민은 현실태만을 확대 해석하여 가능태를 삭제해 버리는 인식의 왜곡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라는 생각은 나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나를 특정 틀에 고정시킨다. 대신 나는 '자기 자비'를 선택하려 노력했다. 자기 자비란 현실태와 가능태를 동시에 바라보는 시야이며, 지금의 나를 왜곡 없이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나의 전부가 아님을 아는 태도다. 나는 나 자신을 고정된 '결과'가 아니라 흐르는 '과정'으로 대하기로 마음먹었다.


또한, 자존감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려 했다. 자존감은 현실태를 기반으로 제한된 가능태만을 허용하는 구조라, 성공할 때는 나를 띄우지만 실패할 때는 나를 무너뜨린다. 대신 나는 '평가'가 아니라 '지속'을 기준으로 삼고자 한다. 오늘의 내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오늘의 내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충분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그러한 만족감에 균열이 일어났다. 같이 일하는 분께서 나에게 “너도 자리를 잡아야 할 텐데…”라며 안쓰러운 듯 말을 건넨 것이다. 연민과 애정이 섞인 그 문장은 즉각 나의 삶을 '설명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나는 “그러게요”라는 적당한 대답으로 그 욕구를 억눌렀다. 나에게도 사정이 있었고, 그 책임을 지며 이전보다 성장하고 있다는 말을 구구절절하고 싶었으나, 타인의 눈에 비치는 모습은 그저 초라한 변명일 뿐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연민은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었나 보다. 타인의 연민이 트리거가 되어 언제든 고개를 들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현실태와 가능태를 생각하며 마음을 돌려보려 한다. 나를 안쓰러워했던 그분은 나의 가능태를 보지 못한 것뿐이다. 그러니 그 판단과 연민이 내 삶의 지속성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타인의 판단, 스스로에 대한 연민과 채찍질, 타인과의 비교 없이 오직 오늘의 현실태만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 지속이 곧 나의 가능태를 만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평가가 아닌 지속을 기준으로 삼고, 오늘의 내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내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훗날, 매일 나의 삶을 설명해야만 했던 이 아르바이트 시절은 내 서사의 풍성한 재료가 될 것이다. 지금의 나의 현실태는 매일 작은 결과물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그것이 나의 가능태를 가속해 현실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과정이 나만의 특별한 후일담이 될 그날을 기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