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지독한 논리에 대하여
이야기에 앞서,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도출된 결론임을 밝힌다. 정신질환은 가벼운 우울증부터 정신착란까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기 때문에, 나의 경우는 조울증 2형과 불안, 그리고 ADHD라는 개별적 케이스에 한정된 이야기임을 미리 일러두고 싶다.
보통 정신질환을 가졌다고 하면 비논리적이거나 정상적인 사고체계 밖에 있다고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들의 의견이나 발언은 사회적 신뢰를 얻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다르다. 정신질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논리적이며, 때로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우울증이나 조울증 같은 기분장애는 대개 '기질'과 '환경'의 정교한 조합으로 일어난다. 여기서 기질이란 특정 부분에 대한 예민함이나 취약성을 타고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질환으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환경적 트리거가 필요하다. 완벽하게 무결하고 안정적인 인간은 전무하다고 보기에, 보통의 인간은 자신의 기질적 취약점을 환경이 건드리는 순간 인과의 굴레에 갇혀 '정신질환자'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우울증인 사람은 없다. 다만 우울하기 쉬운 기질이 환경과 충돌해 필연적인 결론에 도달할 뿐이다.
내가 조울증 2형으로 진단받기까지, 나의 우울과 감정에는 명백한 이유가 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시작된 심각한 가정불화, 입시 실패, 그리고 재수 시절 찾아온 원인 모를 만성 통증까지. 우울감은 심각한 수준에 달했다. 그전까지 나를 둥글둥글한 사람이라 착각하며 살았지만, 그때 나는 내 안의 깊은 어둠을 처음으로 대면했다.
당시의 우울은 철저히 '좌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고등학생이 제멋대로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었고, 사력을 다해 공부하던 수험생에게 입시 실패는 세상의 붕괴였으며, 재기를 꿈꾸던 재수 시절의 끔찍한 두통은 미래의 희망을 앗아가는 사형선고 같았다.
비록 재수는 실패했지만 인생이 곧장 무너지지는 않았다. 대학에 진학한 뒤 스트레칭을 통해 고질적인 두통을 상당 부분 회복했고, 이후 연애와 다이어트, 학업에 열중하며 성취감을 맛보았다. 원하는 대학은 아니었어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하루하루를 즐겁게, 때로는 오만할 정도로 당당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였다. 재회했던 남자친구와 다시 헤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사건은 내 인생에 '죽음'이라는 선명한 선택지를 각인시켰고, 인생은 결코 통제할 수 없다는 회의주의적 믿음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 회의주의는 이후 내 사고의 근간이 되었다. 몇 년간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고, 심해지는 부모님의 불화와 취업 실패는 우울의 농도를 더 짙게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희망찬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오히려 비논리적이지 않은가. 20대 초반의 이 부정적인 사건들은 내 사고체계와 자아상의 부정적 맥락을 견고하게 강화했다. 그릇된 자아상은 나를 혐오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들었고, 나는 어느덧 "세상은 불공평하고, 나는 출발선부터 뒤처졌으며,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명제를 신앙처럼 맹목적으로 믿게 되었다.
사이비 종교인들이 객관적으로 말도 안 되는 교리를 믿고 포교까지 하는 심리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들 내부에도 믿음을 강화하는 치밀한 장치들이 있었을 것이다. 겉보기에 비논리적인 믿음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꽤 오랜 기간 강렬하고 논리적인 흐름을 거쳐 도출된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서사가 아무리 인과 관계가 뚜렷하고 이해 가능한 것일지라도, 결국 '정신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면 이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점검해야 할 때다.
어떤 믿음은 그 믿음과 상통하는 정보만을 끌어들이는 알고리즘처럼 작동한다. 이런 편향성은 나도 모르게 그릇된 사고방식을 강화하고 나를 고립시킨다. 정신병은 귀신 들리듯 갑자기 찾아오는 것도, 굿을 한다고 갑자기 낫는 것도 아니다. 내 안의 우울, 자기혐오, 자기 연민이 가진 그 '지독하게 정교한 논리'를 다른 논리로 깨뜨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논리와 논리가 치열하게 맞서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야는 더 넓고 선명해질 것이라 믿는다. 극단적인 사고에는 반드시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정신질환자가 대개 극단적으로 사고하는 이유도 바로 그 정교한 오류에 갇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