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메커니즘 : 희망의 거세
몇 년 전, 당시 연인이었던 이와 대화를 나누다 어떤 인물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무심결에 한마디를 던졌다.
“그 사람, 멘탈이 약한가 보네요.”
그 순간 나의 분노 스위치가 켜졌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문장을 떠올리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른다. 대다수는 왜 그런 사소한 말에 번뜩이는지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를 건드린 것은 그 짧은 문장 속에 담긴 무의식적인 오만함이었다.
누군가의 고통을 ‘약함’으로 규정짓는 순간, 판단 내리는 이는 자동으로 ‘강함’의 위치에 선다. 타인의 고통을 인간적인 공감이 아닌 우월함의 잣대로 재단하는 행위. 그 은밀한 선민의식에 나는 치가 떨리는 구역감을 느꼈다.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고3 때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대다수가 압박감에 짓눌려 신음하는 수험생 시절, 나에게는 더 가혹한 비극이 덮쳤다. 아빠가 중풍으로 쓰러졌고, 우리 집의 평온한 일상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가정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나는 펜을 놓지 않았다. 3월 입시 상담 때 담임은 내 성적을 보며 서울은커녕 경기도 대학도 힘들다며 나를 깎아내렸다. 나는 오기로 응수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겠다는 일념으로 하루 12시간 이상을 책상 앞에서 버텼다.
고3 생활기록부에는 그 치열했던 시간을 증명하듯
“학급 내에서 성적 향상 폭이 가장 큰 학생 중의 한 명임”이라는 문장이 남아 있다.
이래도 내가 멘탈이 약한 사람인가?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강했고, 사활을 걸고 내 삶을 지탱했다.
하지만 승리의 기록은 오래가지 않았다. 10월 어느 날 사설 모의고사를 처참하게 망쳤고, 수능날에는 가장 자신 있던 언어 영역에서 평생 받아본 적 없는 5등급을 마주했다. 시험장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쉬운 듣기 평가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뇌가 멈춘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9월의 성적이 나의 진짜 실력이라 믿었기에 당연하다는 듯 재수를 선택했다.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선택이라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비극의 서막이었다.
아빠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가장의 무너짐은 고스란히 남겨진 가족의 몫이 되었다. 생계를 책임지던 손길이 사라진 집에서 재수학원은 사치였다. 집은 매일 욕설과 고성이 오가는 전쟁터가 되었다. 방음조차 되지 않는 얇은 벽 너머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를 피해 나는 집 안에서 유일하게 문을 잠글 수 있는 공간, 화장실로 도망쳤다. 변기 위에 앉아 책을 읽으며 현실을 외면했다.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돈 한 푼 없는 재수생에게 세상은 너무 비쌌고, 나는 집이라는 감옥에 갇힌 채 하루를 버텨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머리가 돌덩이를 얹은 듯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타이레놀로 버텼지만, 곧 어떤 약도 듣지 않는 지독한 두통으로 변했다. 걸으면 땅이 울렁거렸고, 눈을 뜨고 있으면 세상이 뒤집힐 듯 메스꺼웠다. 눈을 뜨고 있는 매 순간이 고통이었다. 세상이 가장 눈부셨던 5월, 나의 이유 모를 만성 두통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통증은 10점 만점에 9점이었다. 안면통까지 겹쳤고, 갑상선 기능 항진증으로 심박수는 120을 넘나들었다.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반년도 되지 않아 체중이 14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살고 싶었기에 병원을 전전했다. 정신과부터 내과까지 여러 의사를 만났지만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았다. “스트레스 관리 좀 하셔야겠네요.”9점의 통증을 견디는 사람에게 그 말은 아무런 답이 되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터넷을 뒤지다 마취통증의학과의 신경차단술을 알게 되었다. 수술대에 오르는 두려움보다 이 통증을 끝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수술 후 극심한 통증은 어느 정도 줄었지만, 끈질긴 두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후에도 신경과를 드나들며 치료를 이어가야 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 속에서 입시 공부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겠다”던 나의 자신만만했던 도전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9월의 찬란했던 성취가 무색하게도, 나에게 남은 것은 고장 난 몸과 ‘실패자’라는 낙인이었다.
이렇게 우울의 메커니즘이 완성되었다.
회복의 공간은 고통의 발원지가 되었고, 통증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다. 자신감 충만했던 19살의 나는 의지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과, 반복되는 좌절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력해지는지를 처음으로 배웠다.
우울은 고통의 세기보다는 고통의 영구성에 있다.
이젠 끝날 것이라는 희망이 무참히 부서졌을 때 우리는 우울을 경험한다. 한 번 맞는 사람은 우울하지 않다. 열 번을 맞아도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매일 열 대씩 맞아야 한다면, 내일이 벌써 두려워질 것이다. 예측 가능한 미래의 고통과 반복되는 좌절. 그 강한 필연성이 다른 길을 상상하는 시야를 가로막는다.
멘탈이 약하다는 말에 기죽지 말자.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지도 말자.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단지 안정된 기질과 안락한 환경이라는 두 기둥 덕분에 아직 폭풍우를 만나지 않았을 뿐이다.
가랑비에도 옷은 젖는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는 말은 옳은 듯 보이지만, 억수같이 쏟아진 비는 반드시 땅에 깊은 자국을 남긴다.
묻고 싶다. 비를 맞고 젖은 것이 당신 탓인가? 그날 비가 내린 것이 당신 탓인가? 고통은 나만의 잘못도, 누구의 잘못도 아닐지 모른다. 그러니 타인에 대한 원망과 자신에 대한 혐오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이제는 나를 잠식했던 우울의 메커니즘을 객관적으로 응시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