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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혼잣말 2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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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우 Jan 09. 2023

숫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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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방학 때 남해 친척집에 머물 예정이라고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했다. 선생님은 당분간 못 봐서 아쉬울 거라면서 방학 잘 보내라고 했다. 내 거짓말을 다 알고 저런 반응을 해 준 걸까. 중학교 3학년 가을, 추석을 앞두고 나는 선생님에게 친척이 없어서 명절이면 더 심심하다고 했다. 우리도 그래. 그래서 우리 윤이 어릴 때는 명절마다 여행 갔어. 선생님은 운전을 하며 말했다. 늦게까지 학교에 남은 학생이 나였기 때문에 선생님은 차를 태워준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이 말한 '우리'에 나는 포함될 수 없다. 그게 뭐라고 나는 소외감까지 느꼈는데 선생님은 차 안에서의 그 대화를 잊은 것 같았다. 나 혼자 이런 생각들을 머릿속으로 굴리는 것 자체가 한심할 정도로 쓸쓸한 일이었다. 

   그 후 선생님은 내게 전화하지 않았다. 대신 방학하자마자 내가 전화를 걸었다.   

   "방학 때 그냥 집에 있기로 했어요."  

   "그럼, 우리 집에 놀러 와." 

   선생님의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안도했다. 정말 선생님은 윤과 내가 친구가 되길 바란 걸까. 윤은 대부분 닫힌 방 안에 있었다. 어쩌다 거실로 나오면 나는 거리를 두고 윤을 안 보는 척 의식하는 일을 한다. 나는 선생님 취향의 영화를 선생님과 보거나 티타임을 갖는다. 무의미하기 때문에 의미 있는 대화들이 티타임 중에 오고 간다. 윤 모르게 나지막하게 선생님이 들려주는 윤의 어릴 적 이야기는 선생님한테는 의미 있어도 나한테는 무의미했다. 나의 이야기는 나한테도 무의미했다. 아버지가 온갖 무술을 잘하는데 나 자신은 할머니한테 팔씨름도 질 정도로 약골이라는 같잖은 이야기. 그때만 해도 나한테는 이야기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더 이상 소년이 아니며 내 안에는 이야기가 끝이 뾰족한 뿔처럼 돋아나 있다.

  이제 수상했던 그 여름밤 사건을 고백해야 한다. 그날 저녁, 선생님은 전화 한 통을 받고 긴박하게 외출 준비를 했다. 윤의 방문을 노크하더니 병원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전했다. 선생님의 어머니가 119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실려갔다는 것이다.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나는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나한테 의외의 말을 했다.  

  "오늘 자고 갈래?"

   나는 네, 라고 대답했다. 그 말밖에 할 줄 모르는 것처럼 무기력하게.     

  

  그 밤 나는 함부로 단정한다. 선생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내가 윤보다 더 선생님을 걱정하고 있다고. 곧 선생님의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은 걱정해 줘서 고맙다면서 괜찮다고 했다. 선생님의 어머니는 걷기 운동을 하던 중 공원에서 갑자기 쓰러졌는데 다행히도 운동 나온 사람이 바로 발견하고 심폐소생술을 했다. 신속한 응급조치 덕분에 선생님의 어머니는 병원에서 회복 중이라고 했다.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오늘밤 병원에서 지내고 내일 오겠다고 했다. 통화하는 내내, 내가 꼭 선생님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통화 내용을 윤에게도 알려야 하나. 나는 잠시 윤의 방문 앞에 서 있었다. 닫힌 방문이 나를 무시하는 듯 보였을 때야 나는 나를 비웃으며 소파로 갔다.   

  윤의 방 작은 베란다 너머에 여름밤이 넘실거린다. 윤은 침대에 앉아 고개를 돌려 밤을 보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같다. 나는 그 풍경을 그림처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괜찮아?"

  그림 속 인물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허무하다. 

  "네 역할에나 신경 써."

   윤은 내 쪽은 보지도 않고 말했다. 

  "내 역할?"

  “살아 있는 감시카메라. 결벽증이 있는 엄마가 왜 널 여기로 끌어들였겠어. 나를 감시하라고 붙인 거야. 내가 또 손목을 그을까 봐. 친구 좋아하시네." 

  윤과 이렇게 오래 대화를 한 건 처음이다. 아니 대화 자체를 한 게 처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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