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50분. 노트북가방을 싸고 겉옷을 입은 다음 스마트폰시계를 본다. 숫자가 6시로 바뀌면 뛰어나가 지하철역까지 한숨에 달린다. 환승구간에서는 사람들 사이를 뛰다걷다를 반복, 마을버스를 타고 집 현관문을 연 시간은 7시20분을 겨우 맞췄다.
“율이엄마 오늘은 빨리 왔네요.”
“더 빨리 온다고 왔는데 죄송합니다.”
베이비시터를 보낸 뒤 쌓인 집안일, 젖병 설거지와 빨래, 청소 등을 하고 나니 아이가 잘 시간이다. 하루종일 아이와 함께한 2시간30분, 그중 눈을 마주치고 놀아준 건 한시간뿐. 그래도 야근하는 날은 잠든 얼굴밖에 못 보는 것을 생각하며 위안삼는다.
2년 전 첫아이를 맡기고 워킹맘이 됐던 내가 다시 육아휴직을 일주일 남겨두고 일과 육아의 기로에 섰다. 회사 근처로 이사하면서 출퇴근시간은 짧아졌지만 회사에서의 책임감은 무거워졌고 아이는 하나에서 둘이 됐다.
워킹맘이 퇴사를 고민하는 순간은 대체로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보낼 때다.
복직 준비를 하면서는 아이들이 무엇인가 직감이라도 한 듯 이유없이 보채거나 아프기 시작했다. 순하디 순하던 둘째는 아빠에게마저 안기기를 거부했고 큰아이도 밤새 기침을 해 병원을 오갔다.
생전 본 적 없는 남에게 아이를 맡길 때도 흔들리지 않았기에 복직을 결심하는 일은 쉬웠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복직을 포기하는 엄마들이 많다고 하지만 사실 이것은 아주 작은 고비에 불과하다.
큰아이가 16개월 무렵에는 어린이집을 보냈다. 어느날은 연차휴가를 내고 처음으로 아이를 데려다줬는데 선생님 손에 안겨 “엄마!”를 부르며 우는 아이를 뒤로 하고 생각했다.
‘굳이 회사를 다녀야 할까.’
다음주 예정대로 출근하고 나면 두 번의 복직, 어린이집 적응의 고비를 넘기므로 앞으로 남는 건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초대형위기다.
초등학교 1학년은 워킹맘이 사표를 가장 고민하는 시기다. 오후 7시30분까지 아이를 돌봐주는 어린이집과 달리 초등학교 1학년은 오전수업만 하는 날도 있고 방과후학교를 마쳐도 직장인의 퇴근시간에는 훨씬 못 미친다. 그래서 맞벌이부모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사교육현장에 내몰리지만 그마저 좋은 대안은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은 부모의 손길이 여전히 필요하면서 많은 일을 스스로 해나가야 해서 단체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초 초등학교 1~3학년 자녀를 둔 직장여성 1만5841명이 퇴사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경력단절 여성은 2016년 33만 명에서 지난해 2000명가량이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가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맞벌이부모의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것은 정말 현실적인 행정이다. 모든 직장인이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점은 아쉽지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보편화돼가듯 우리 사회가 점차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또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는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날도 온다는 선배 워킹맘들의 말이다. 그런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