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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향 Sep 26. 2019

남편의 취미생활 농구

몰두하는 사람의 매력

  남편을 만난 건 소개팅에서다. 그는 내 친한 친구와 결혼 예정인 남자친구의 절친이었다. 술자리에서 우연히 남편의 사진을 보고 내가 먼저 소개해달라고 했다. 이후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얼굴도 보기 전 당시 유행이던 카카오스토리를 훔쳐봤다.


  카카오스토리를 보며 알게 된 사실은 그가 농구를 무척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과거 사진으로 가면 갈수록 그는 농구를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농구가 인생의 전부인 사람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였다. 처음에는 그 모습이 멋있고 열정적으로 보이다가 어느 글을 읽고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아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유년시절과 10대 청소년, 20대를 통틀어 모든 중요한 사건은 농구와 연관돼 있고 농구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그에게 우울한 일은 농구할 때 컨디션이 안 좋거나 함께 농구하는 친구에게 나쁜 일이 생겨서다.


  살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봤지만 왠지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무언가에 단 한 번이라도 순수한 열정이 있었나. 물론 나도 좋아하는 일이 있고 일할 때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그건 단순히 휴식을 위한 커피 마시기나 책 읽기, 수다 떨기 등이고 일은 내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귀어본 남자친구들은 대부분 자기 일을 사랑하고 프라이드가 강했지만 늘 계산적이었다. 서로 불같이 사랑했어도 다툴 땐 자존심을 부리고 마음 한구석엔 늘 상처 받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태도나 서로의 조건을 비교하는 것이 느껴졌다. 우월감 아니면 자격지심, 둘 다 없는 사람은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연애든 결혼이든 비즈니스인 시대인데 100% 순수한 열정이 세상에 과연 존재할까.


  하지만 남편을 만나고는 이런 내 인간관이 달라졌다. 특별하진 않아도 그동안 내가 알아온 사람들과 다른 장점이 많았고 그와 함께 있으면 정말 매 순간이 재밌었다.


  문제는 아이가 생기고 나서다. 남편의 전부나 다름없는 농구인데 언제부턴가 농구공만 봐도 화가 치밀었다. 22개월 터울의 갓난아기 두 명과 아내를 내팽개치고 취미생활을 즐기러 나가서 다섯 시간 동안 안 들어오는 남편이 때리고 싶도록 미웠다.

  화를 내고 싸우다 보니 남편이 농구를 하러 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육아로 지친 체력이나 무릎인대가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내 눈치가 보였을 것이다. 한때는 남편이 농구하러 갈 때 따라가서 구경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마저 싫어졌다. 일주일에 서너 번이 두세 번으로, 한두 번으로, 2주일에 한 번으로, 3주일에 한 번으로 줄다가 몇 개월째 농구하러 간다는 말이 사라지자 조금 아쉬웠다. 어느새 아이들은 훌쩍 자라 세 살, 다섯 살이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경기 도중 농구장으로 뛰어들거나 고막이 찢어지게 울어대서 남편 친구들의 눈치를 보느라 힘들었는데 이제 아이들은 제법 말을 잘 듣는다.


  "요즘 농구 안 하고 싶어? 가고 싶으면 가도 돼!"


  지난주와 이번 주 2주 연속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을 따라 농구장을 갔다. 율이는 "아빠 최고야!", "아빠 멋있어!" 열광하고 둘째 솔이도 그럭저럭 사고는 안친다.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지루해진 아이들이 칭얼대기 시작하면 한 시간은 스마트폰을 쥐어줬다. 또 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두 딸은 아빠의 농구에 집중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는 평일 저녁에 농구를 끝내고 집에 와 아이들을 씻기고 나면 자정이 돼 고단하지만 집에서 아이들과 씨름한다고 덜 힘든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인생은 농구처럼 재밌고 행복하다.


  농구 때문에 남편을 사랑한 건 아니지만 오늘 경기를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사랑은 상대가 행복한 모습을 볼 때 나도 행복하다고 깨닫는 것이다. 힘든 과정을 견디며 우리는 한 단계 성장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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