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만 버티면 안정기에 접어드는데 가장 불안한 건 하루 두 시간 반을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일이다. 입덧을 하며 지옥철을 타고 달리면 정말 생지옥에 있는 기분이다.
예전에 임신한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초기에 장시간을 서서 출퇴근하다가 유산된 경우도 많고 설령 유산이 되지 않더라도 하혈로 인해 병원에 실려가는 일이 더러 있었다.
지난주 임신 사실을 알고 보건소에 가서 지하철 임산부 배지를 받았다. 2년 전 임신 때보다 배지의 크기가 약 3배 정도 커졌다. 뉴스에서 임산부 배지가 너무 작아 눈에 안 띈다는 지적이 많아져 이렇게 개선된 것 같아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지의 크기가 임산부석 양보와 상관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요즘 매스컴에서 많이 나온 덕분에 임산부 티가 나는 임신 후기나 만삭의 경우는 자리를 양보받기가 쉽다. 나도 첫째 아이를 임신해서 만삭일 때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해줘 늘 감사한 마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러나 임산부에게 가장 중요한 초기 2~3개월 때는 유산의 위험이 높아 오래 서있는 것이 불안함에도 누가 봐도 임산부인지 알 길이 없고 승객들은 임산부 가방에 달린 배지를 절대로 눈여겨보지 않았다.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보거나 잠을 자기 때문이다.
특히 출근길 지옥철일 경우 임산부 배지를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승객들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상황에서 누가 남의 가방을 유심히 쳐다보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당당하게 양보를 요구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까지 양보와 배려는 베푸는 사람의 자율이지 강요에 의해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는 지하철을 타고 중간쯤 왔는데 아랫배가 끊어질 듯 아프기 시작했다. 조금 겁이 나기도 해 임산부석 앞에 서서 자리를 양보해주길 기다렸지만 아무도 알아챌 리 없었다.
갑자기 2년 전 지하철에서의 일이 생각났다. 만삭의 몸을 끌고 지하철을 탔을 때 한 할아버지께서 자리를 양보해주셨다. 그런데 멀리서 한 젊은 남자가 뛰어와 자리를 맡더니 여자친구를 불러 앉히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 멍하게 있었는데 자리를 양보해주신 할아버지가 청년을 꾸짖었다. "이 사람아, 내가 임산부한테 양보한 자리를 자네가 앉으면 어떡하나?"
내일부터 설 연휴가 시작되고 연휴가 끝나면 안정기까지 4주의 시간이 남는다. 부디 뱃속의 아기가 그 시간 동안 무사히 버텨주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