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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mpo Primo Aug 06. 2019

키티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했다.

서머셋 몸의 <인생의 베일>을 읽고

  키티의 인생이 이다지도 평탄하지 못하고, 인생의 베일을 걷어내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 이유는 그 시대의 '여성상'과 '남성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의 여성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성취는 성공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었다. 키티의 어머니도 그러했다. 키티의 어머니는 그 성공을 얻을 수 없었고, 그래서 그녀의 딸들이 '성공할 수 있는가'를 품평한다. 그나마 두 딸 중에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것이 키티였고,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그녀에게 그 성공을 얻으라는 주입을 끊임없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키티는 월터라는 그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비극은 이미 그 시점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원래 사람은 남의 눈치를 보게 되는 순간 이상한 결정을 하게 되니까.

  월터와의 결혼 생활이 성공적이지 못했던 키티는 찰스라는 훨씬 미래가 밝은 남자와 불륜을 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는 거의 화가 날 뻔했다. 월터가 찰스와의 불륜을 알게 되고 그에게 이혼하고 키티와 결혼하겠다는 확답을 얻어오라는 요구는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것이었다. 찰스는 출세를 눈 앞에 두고 있었고, 남들이 보기에 매우 적절한 가정도 꾸리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이혼하고 내연녀와 결혼한다는 결정은 본인의 평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 뻔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그것을 포기하는 선택을 절대 하지 않는다. 사실 애초에 그것을 포기할 정도로 키티를 사랑하지도 않았을 것이 명백하다.


  결국 그래서 떠나게 된 메이탄푸에서 키티는 드디어 인생의 장막을 걷게 된다. 콜레라가 창궐하는 곳에서 본인의 몫을 다하며 존경받는 월터와 극한의 상황에서도 깊은 신앙심과 이타심을 발휘하는 수녀들은, 한 번도 '자기 스스로의 능력'으로 평가받아본 적 없는 키티에게는 충격이었을 것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키티는 어머니에게, 그리고 사교계의 남자들에게 외모로서 평가받았을 뿐 그가 가진 능력으로 칭송 받은 적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월터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고,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갈 계기가 생겼다 싶었는데 키티의 임신과 월터의 죽음이 찾아온다. 이 깨달음을 조금 일찍 얻었으면 좋았을 성 싶었다. (물론 다시 홍콩으로 돌아온 이후 찰스와의 재회에서 본 바와 같이 완전한 형태의 깨달음은 아닌 것 같다.)


  만약 키티가 어렸을 적부터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성공이 남성의 성공과 지위, 명예에 의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떠올랐다. 연간 500파운드의 소득과 자신의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있다면 여성도 자기 스스로의 성공을 성취하고 더 자유로운 삶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는 것이 그의 글의 골자이다. 만약 키티에게 '자기만의 방'이 있었더라면 그녀는 자신의 삶을 그렇게 극한으로 몰고갈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글의 마지막 부분에 키티가 아버지와 나눈 대화에서 그것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난 딸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범한 실수를 그 애가 저지르지 않도록 잘 키우고 싶기 때문이에요. 어릴 적 모습을 돌이켜면 제 자신이 싫어요. 하지만 제겐 기회란 게 전혀 없었어요. 내 딸은 자유롭고 자기 발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키울 거예요. 난 그 아이를 세상에 던져놓고 사랑한답시고 결국 어떤 남자와 잠자리를 갖기 위한 여자로 키우기 위해 평생토록 입히고 먹일 생각은 없어요."  (328p)


 키티의 아이가 월터의 아이이든, 찰스의 아이이든,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 없다. 다만 책장을 덮으며 그의 아이는 그가 겪었던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2019년 트레바리 '문고전' 7월의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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