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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PHYSIS Jan 13. 2022

'알아서 잘 큰다'라는 핑계


킥보드를 타는데 왜 땅만 보고 갈까.


그 탓에 맞은편에서 역시 땅만 보고 걷는 다른 아이와 부딪힐 뻔했다. 내가 화를 낸 포인트는 부딪히기 한참 전에 앞을 보고 가라고 해도 고개를 안 들었던 것.


나는 아이에게 “왜 이렇게 오늘따라 말을 안 듣냐”라며 무서운 표정으로 화를 냈다. 유치원 등원하며 선생님의 경쾌한 "엄마한테 인사~"에도 아이의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은 참 슬펐다. 그런 눈을 보면 나는 또 기분이 가라앉는다.


주말부부, 주말 가족일 땐 그토록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이 아쉽고 미안했는데. 매일 보는 요즘은 어쩜 이리 내가 달라질 수 있나 놀라울 따름이다.


뭐가 문제지? 나란 엄마는?

아이는 그래서 아이잖아.

나는 아이에게서 뭘 기대하는 걸까?

'아직' 부족한 면은 알려주면 되는 건데.


...

아니다. 부족한 건 나구나.


부족한 건 나였어… 내 이기적인 모습을 애써 외면해왔다.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심지어 때로는 내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까지 했다. 아이가 일찍 등원해야 하는 것도 그의 습관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시간이 더 생기니까’가 더 큰 동기다. 그래서 아침엔 '빨리'를 입에 달고 산다. 아이가 아닌 내 시간을 위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운 오늘.



나는 '아이는 알아서 잘 큰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게 나를 위한 생각은 아닐까 의심이 든다. 이 책을 읽고서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직은 읽고 있는데, 4~7세 아이 육아와 관련해 중요한 내용이 많아 따로 정리해 보고 싶다.


우리가 어렸을 때 동네 언니, 오빠들을 보며 노는 방법을 배웠듯, 노는 것도 가르쳐주어야 하는 것이란 게 오늘 내가 얻은 포인트. 그러니 엄마가 공부해야 한다. 잘 노는 방법을! 아이가 행복한 인생을 만들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엄마가 되기 위해.


책을 읽다 한 가지 떠올라 바로 움직여본다.


올해 꼭 실천해야할 계획을 세웠다.

이제 퇴사도 했겠다, 한 달에 한 번은 뜬금없이 이른 하원을 하는 거다. 그날은 말 그대로 아이와 신나게 노는 날로.


그래서 이번 달은 그게 바로 오늘이다.

오늘 우리의 계획은?


1. 서점 가서 사고 싶은 책을 사게 한다. (그게 비록 포켓몬 도감일지라도.)

2. 동네 그냥 걷기, 간식 사 먹기, 천천히 걸으며 마음껏 관찰하게 두기. (추워 얼어 버릴지라도.)

3. 집에 와서는 아이가 좋아하는 역할놀이 무한정하기. (악당과 파충류를 수십 번 하더라도.)

4. 서점에서 산 책 읽어주기, 따뜻하게 안아주기, 그려 달라는 거 스케치해 주기.

5. 그리고 거실 전시회 열기!


적고 보니 소박하다.

이걸 오늘 다 할 수 있을까? 해야지. 이게 오늘 내 임무다. 그리고 이 임무를 무진장 즐길 거다. 다른 생각 않고. 노는 것도 나 같은 사람은 계획을 세워야지, 안 그럼 또 ‘알아서 논다’에 기댄다는 걸 알았다.


이게 오늘 아침 '화 부림'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 줄까?


모르겠다. 조금씩 노력하는 거다. 이렇게, 내 방식으로.


내게 제일 중요한 것은 일도 아니고, 내 시간도 아니라, 여기 바로 지금 느껴지는 내 사랑이니까.


매일은 못해도 한 달에 하루 날 잡고 하는 건 뭔가 이벤트 같고 좋다. 이 이벤트를 매달 꾸준히 하는 것. 올해 내 육아에 관한 작은 목표다.  


'알아서 잘 큰다'라는 핑계 뒤에 숨지 않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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