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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PHYSIS Jan 20. 2022

육兒 아닌 육我 이야기

가난한 마음에 대한 고백


오늘은 육兒 아닌 육我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2022년엔 마음이 부자인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그게 쉬워 보이진 않는다.


그저께 시부모님이 올라오셨다. 수도권에 있는 병원을 이용하시기 위해 종종 올라오신다. 며칠 우리 집에 머무시기로 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다시 가난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싹퉁머리 없기는'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종종 내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사람에겐 영역을 침범당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이유, 상황 등 모든 걸 이해하지만, 내 마음만큼은 머리만큼 쉬이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나는 또 가난해지는 내 마음을 보며 아쉬워한다.


싫고 좋음이 분명해서일까, 나라는 자아와 더불어 살아가기 불편할 때가 많다. 나랑 정반대인 동생을 보면 그 편안함이 부러울 때가 있다. 싫은 것이 딱히 없고, 좋은 것도 딱히 없으나, 그렇다고 감정이 메마르지는 않은 그녀. 조카의 동요 발표 영상을 보며 감동해 울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를 보면, 가끔 엄마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같은 뱃속에서 나왔는데, 어찌 저리 다른지."


어릴 때 성격에 대해 동생의 그것과 비교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자랐다. 어느 순간, 잘은 모르겠지만 엄마 말이 맞는 말 같다고 느꼈고, 그런 생각에 이르면 또 기분이 상하곤 했다. 동생은 늘 부모님을 먼저 생각했고, 나는 나 먼저 생각했다. 엄마의 말이 틀리지 않다. 동생의 마음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부유하다.


조금 어른이 되어서는 엄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마음에 콕 박혀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그게 다시 엄마를 미워하는 마음을 둥둥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그런 나 자신이 미운 날이 많았던 뜨겁고 여린 날들을 보냈다.


어렸을 적 엄마의 말처럼 난 '태어나기를, 이기적이고 못된' 애로 태어났을까. 설마, 진짜로 그렇게 태어난 사람일까. 아님 그 말로 인해 진짜로 이기적이게 된 것일까.


답은 신만이 아시겠지만, 나도 어렴풋이 알아 간다. 그런 말을 한 엄마도 어렸음을, 잘 몰랐음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벅찼을 수도 있음을.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렇게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본성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바꾸려고 노력하는 일은 가치 있으니까. 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지낸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만들어 내지 않으며. 미워하는 마음만큼 손해 보는 일은 없으니까.


그래서 그저 노력할 뿐이다.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기 위해. 이렇게 가난한 마음을 고백하며, 내일은 조금 덜 가난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 놓고 또다시 가난해져 버리니 그런 내 모습에 한숨이 나오는 날에는 브런치에 글을 안 올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나를 저~기 떨어뜨려 놓고, "쟤 좀 보래요. 또 저런대요." 하며 망신을 주고 싶은 이상한 마음.


시부모님이 오시기 하루 전, 나는 저녁 내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불쑥불쑥 드는 탁한 색의 상상. 좋은 직장을 그만둔 것에 대해 돌려서 안 좋게 말씀하시진 않을까. 그럼 뭐라고 말씀드리지. 이렇게 말씀드릴까. 아니 저렇게. 집 안이라도 깨끗이 치우자. 아 몰라, 혼자 있고 싶다....


늘 그렇듯, 막상 와 계시면 아무렇지 않다. 시부모님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집에 있으면 느낄만한 딱 그 정도의 불편함. 어머님은 퇴사에 대해서는 날씨에 대해 묻듯 가볍게 말씀을 꺼내셨다. 어쩌면, 어머님도 고르고 고른 말일지도 모르겠다.


"맞아, 현재가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한다더라. 잘했어. 편하게 살아라."

...


나는 퇴사에 대한 타당성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일까. 시부모님이 오시기 전, 예상 질문과 그에 대한 나의 예상 답변을 수없이 시뮬레이션했던,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내 모습. 그렇게 마음은 나도 모르게 경직되다가, 어머님이 가볍게 꺼낸 말 한마디에 스르르 녹아버린 것이다.


나의  볼품없이 찌그러진 마음이 부끄러웠던 순간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는 나는 1월이  가기  다시 다짐을 해본다. 올해만큼은 여러모로 마음이 부유한  해를 가져 보자고.


그렇게 육兒 말고 육我나 잘하자고 마음먹어본다. 


새순도 나에게 말한다 : 너나 잘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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