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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PHYSIS Feb 04. 2022

사랑도 노력

여러모로 형편없는 엄마의 고백

"오늘 입원해야 해요."


이제 엄마가 세종시에 가지 않고 집에 있다는 걸 아들의 몸이 아는가 보다. 마음껏 아파도 돌봐줄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걸 느끼는지, 7살 아들은 2살 전까지 자주 걸리던 폐렴에 다시 걸렸다. 내일 입원하기로 했는데, 아이가 어렸을 때 자주 했던 병원 생활이 떠올라 숨이 턱턱 막혀왔다.


아이는 식도가 막힌 채 태어났다. 출산 후 소아과 의사가 기도와 식도에 팁을 넣어 양수를 빼내는 과정에서 알게 되어 곧바로 대학병원으로 옮겨 수술했다. 식도와 기도는 특히 어릴 때는 연한 근육으로 되어 있는데, 그 수술 후유증으로 기도가 말랑말랑 해지면서 기관지가 약해지고 다른 아이들보다 더 쉽게 호흡기 질환에 걸렸다. 폐렴으로 자주 입원을 했는데, 그 탓에 그렇지 않아도 약한 호흡기계 기관의 기능이 더 약해졌다. 폐렴에 한번 걸린 폐는 그다음에도 각종 호흡기 질환에 취약하다.


크니까 조금씩 나아진다. 4살 정도가 되자 병원에는 덜 가게 되었고, 정기 외래만 잘 챙기면 되었다. 하지만 매일 밤, 네뷸라이저 치료를 해야 했고, 아이는 감기가 아니어도 기침과 가래를 달고 살았다. 코로나 시대에 이런 증상은 더욱더 우리 같은 사람에겐 불편하다. 유치원 입학 때는 전염성이 아니라는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했다. 남편과 나는 자주 아이에게 밖에서 기침을 참으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폐쇄성 기관지염(기관지가 염증성 물질 때문에 부분적으로 막혀서 발생하는 기관지염)을 만성적으로 가지고 있어 가래를 오히려 배출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말을 하는 우리 부부도 가슴이 아팠다.


의사는 더 커야 낫는다고 한다. 몸이 커지면서 기도와 기관지도 넓어지면 나을 거라고 하는데, 지금도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작고 여전히 기침을 한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 고열에 기침과 가래 증상이 더 심해진 것이다. 잡(?) 바이러스에 의한 감기일 거라고 생각하며 이번에도 그저 넘어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오늘은 병실이 없어 코로나 검사까지 다 마치고 내일 입원하기로 했다.


난 가끔 ‘어쩌다 식도가 막힌 아이를 낳았는지’ 궁금하다. 내가 뭘 잘못했지? 우리 부부는커녕 우리 부모님들, 형제와 자매까지 아픈 사람이 없다. 산부인과 의사는 출산 후 며칠 뒤 내게 말했다. 뱃속에서 우리 눈 코 입 귀 식도 등 몸의 각 기관이 형성되면서 크거나 작게 혹은 모양도 다르게 만들어진다고, 그 과정에서 막히거나 변형이 있을 수 있다고. 뱃속에서 아들의 식도는 그렇게 아주 미미한 확률로 막혀 버렸다.


지나고 나니 식도 수술로 인해 영향을 줄 것 같았던 먹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 옆의 근육인 기도가 이번과 같은 문제를 자주 일으켰다. 두세 살까지는 폐렴과의 전쟁이었다. 7살이 될 때까지 매월, 또는 증상이 좋을 때는 격월로 외래 진료를 받고 약을 받아 왔다. 그래도 좀 큰 후엔 입원은 하지 않았다. 세종시에 따로 지낼 곳을 구하고 주중엔 따로 생활하면서도 아들이 아프면 어떡 하나를 제일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우리는 아들이 많이 컸구나 하며,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약을 타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2022년 구정이 딱 지나면서 폐렴 증상이 시작되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엄마가 일하는 동안 아프지 않았던 건, 그만큼 아이가 컸다고 봐야 하는데, 당장 그이 상황이 싫었다. 입원해야 하는 상황, 기침과 가래가 심한 상황, 어렸을 때의 병원에서의 기억이 떠오르는 상황. 이 모든 것이 당장 싫을 뿐이었다.


아이는 내 눈치를 본다. 내 표정이 좋지 않으니 다가와 "아프게 태어나서 미안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아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게 한 나 자신에게 얼마나 화가 났던지. 그건 내가 어제 아이에게 화가 나서 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엄마가 화가 나서 한 말인데 정말 미안해. 그건 네 잘못이 아닌데, 정말 미안해" 하며 나는 아들을 안고 울었다. 아이 앞에서 울지 말라는데, 나는 가끔 운다. 그럼 아들도 따라 운다. 정말 여러모로 형편없는 엄마다.


누가 보면 겨우 폐렴으로 입원하는 것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폐렴으로 입원'이라 하면, 한 번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에겐 별거 아닐 수도 있다. 혹은 더 큰 질환으로 더 오래 병원에 있었던 사람에겐 정말 별거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아들이 폐렴으로 입원할 때마다 안 좋았던 기억이 너무 많아서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이젠 '입원'이라는 글자만 봐도 공황이 올 것 같다. 불안하고 두렵고 질식할 것 같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무기력감. 이건 내가 만들어 낸 허상인걸 알고 이겨내야 하는 숙제라는 것도 잘 안다.


방법은 이번에도 '무뎌지기'인가. 이럴 땐 나를 멀찌가니 내버려 두고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계속하라는 것도 아니고 며칠 입원하면 되는 건데, 진짜 뭘 그리 호들갑인지. 그런데 이번엔 며칠이 될지 모르겠다. 의사는 좀 길 수도 있다고 한다. 그냥 이 시간도 다 지나가리라 믿는 수밖에 없다. 남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하겠지만, 나는 안다. 이럴 때 나는 정신줄을 잠시 내려놔야 한다는 걸.


이런 나와는 달리 남편은 차분하다. 오히려 아들에게 웃으며 "입원하고 무슨 장난감 챙겨갈까? 가는 길에 사탕이랑 젤리 사 갈까?" 하고 묻는다. 그럼 아들의 어두운 표정은 부드러워지고, 이모와의 통화 중에 "아빠랑 재미있게 놀기로 했어요" 하며 입원하는 걸 재미있다는 듯 이야기한다. 남편은 반차를 쓰고 병원으로 와  함께 입원 수속을 밟았다. 내 정신 상태를 걱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그 스트레스가 자기 아들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코로나로 부모 중 한 명만 보호자로 머물 수 있어 주말엔 남편이, 주중엔 내가 아이를 돌보기로 했다. 병실에 있지 않아도, 병실에 있는 사람만큼이나 괴롭다는 걸 잘 알지만, 그렇게 해야 덜 지친다는 것도 안다.


병원에는 짧게라도 있어보면 안다. 어디 살고 무슨 차를 타는지, 멋진 옷이나 장신구, 취향, 취미 같은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가 않아진다. 여기서는 진료나 치료 같은  일을 보고 최대한 빨리 나가는 , 빨리 퇴원하는 ,  얼른 나아 병원을 최대한 빨리 나가는  말고는 바랄  없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왔을까 싶고, 기다림이 반복되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 인간의 생로병사가  모여 있는 . 사회에 없어서는   곳이다.  누구든 한때 아플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구도 잘못한 사람은 없다. 식도가 막힌 아이를 낳은 우리 부부도, 식도가 막혀 태어난 아이도.


육아가 어려운 것은 이런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종종 오기 때문 아닐까. 그리고 그런 것에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내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도. 내 머릿속 다른 엄마들처럼, 강인해지고 싶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음은 차치하고라도, 부모의 희생, 부정, 모정, 강인함 이런 것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란 것도 잘 안다. 사랑도 더 키우려고 노력해야 그 효과도 크다.


내가 강인하든 약해 빠지든, 어쨌든 내일 입원해야 하고, 아이는 분명 낫는다. 매번 걱정했지만, 매번 잘 회복되었으니까.


오늘 하루, 아이와 맛있는 걸 먹고, 함께 신나게 뒹구는 것 말고 달리 뭘 해야 하나.


모르겠다, 오늘만 살자.

내일부터는 시간이 빨리 흐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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