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상한 시절이었다. 어린아이들이 인파 속에서 길을 잃듯이, 사람들이 돌연 도시에서 미끄러져 빠져나가며, 임시 주소와 연락하겠다는 약속만을 남기곤 떠났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시간이 빠져 달아나는 느낌, 여유를 잃어버리고, 기회를 놓쳐 버리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길고 뜨거운 여름, 아름다운 여름이었다, 하루하루가 새살을 활짝 드러내며 터져 나왔지만, 즐기기는 어려웠던 것이, 막다른 시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날마다 현관 계단에 앉아서, 구인 광고에 빨간색 사인펜으로 낙관적인 동그라미를 치며, 여행이나 런던으로 이사 가거나 카페를 여는 얘기를 하고, 다음 날 아침까지만 분명해 보이는 계획을 세우며 보냈다. 그 일종의 계획들에 대해서, 그 모든 웹사이트들과 옷 가게와 도넛 가게들에 대해서, 우리 중 누구도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손쉬운 확신의 시기는 종말을 맞았고, 우리 대부분은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렸다. 우리는 현관 계단에 앉아서 저녁까지 한참을, 대화가 드문드문 해지고 나서도 오랫동안, 마침내 별이 비어져 나오면 이불을 아래층으로 끌고 내려와서, 빈 맥주 캔 뚜껑 고리를 흔들며, 빈 와인병을 불어 소리를 내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내일은 무엇을 할까 생각하면서.
존 맥그리거, <기적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면> 중
10년 후 지금의 이 '이상한 시절' 역시 남의 것인 마냥 낯설 것이다.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꿈꾸는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쓴다. 자신감이 넘쳤던 시절은 몇몇 순간을 제외하곤 없었다. 그러기에 만들어내야 한다, 자신감을, 확신을. 내일까지만 분명한 계획이라 하더라도 매일 고치며 그렇게 시간을 보낸다. 내일은 무엇을 할까.
아름다운 꿈을 가진 한 남자가 있다. 그는 고래의 수면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눈을 반짝인다. 고래가 자는 모습, 너무 아름답지 않냐며, 그것을 가지고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며, 아주 놀라운 것을 발견한 것처럼 놀랐다. 지금도 엘리트로 세상에 도움 되는 것들을 만드는 그가, 이른 아침 버스를 기다리며 습작을 한다. 나는 그렇게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맑고 아름다운 얼굴을 봐버렸다. 그건 십 년도 더 된 일인데, 그는 항상 나의 가장 깊은 어딘가에 콕 박혀 나오질 않는다.
그는 언젠가 말했다. 손가락을 세 개 펴면서, 살면서 세 명의 이성을 만난다고. 자신의 엄마, 그리고 결혼하여 생을 함께 하는 누군가, 그리고 마음속에 남는 끝까지 새겨지는 사람. 그 세 번째가 나인 것 같다고 말하며 수줍어했다. 그의 접힌 세 번째 손가락과 함께, 그가 추천한 책이든, 말이든, 음악이든, 생각이든 그렇게 지워지지 않고 가슴에 남아 버렸다.
아주 오래전에 그가 추천해 준 책을 읽고 쓴 리뷰를 다시 읽어 보았다. 행복을 이야기하지 않고서, 비극으로써 삶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소설이었다. 그것을 읽고 쓴 나의 오랜 리뷰는 아주 형편없고 휘몰아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글이었지만, 그 안에서 내 순수한 젊음이 되살아난다.
남의 것인 마냥 어색하면서도 반갑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와 수많은 사람들과 아름답지 않은 수많은 잊힐 것들조차 사랑하겠노라, 삶에 대한 애정이 속속들이 기억난다. 거기서부터 나는 지금 얼마나 떨어져 왔을까, 눈떠보니 아주 먼 곳에 도착한 것처럼 당황스럽고 또 아득하다.
그때에 비해 많은 것들이 나아졌고, 나는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 콩닥거리는 능력을, 기적을 발견하는 방법을 잊은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그를 생각한다. 삶을 사랑할 줄 아는 그 눈망울을.
모든 게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수많은 불확실함 속에서도 분명한 것 하나는 키우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희미해진 것을 되찾을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