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다 읽어 버리고 싶지 않은 책을 아쉬운 마음으로 덮었다. 아직도 한참 남은 쪽 수를 보고 안도하며 읽었던 비타민 같은 책이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종종 읽는다.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어떻게 쓰였는지, 작가들은 어떤 생각과 어떤 과정으로 글을 구성하고 책으로 펴내기까지 했는지 궁금하다. 그 글을 읽는 동안 묘한 창작열이 타오르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하는 그 모든 경험을 좋아한다.
별 기대 없이 들춰 본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정지우 지음)>. 예전에 이 저자가 쓴 <분노사회>가 화제가 되었던 걸 기억한다. (신기한 게 화제가 된 책은 읽지도 않았는데도 읽은 듯한 느낌을 준다. 여러 지면에서 책 내용이 언급되어서 그런 것 같다.) 그에 비해 저자의 이 글쓰기에 관한 책은 아직은 그리 유명한 것 같지 않다.
'글쓰기를 둘러싼 거의 모든 이야기'라고 소개된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어떤 'How to~'는 아니다. 어떠한 글쓰기 책 보다 머리보다는 마음이 채워진 책이었다. 작가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래로 겪고 성찰해온 이야기인데, '잔잔한 글로 짧고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답을 준 책이기도 하다.
오래 생각한 듯한 당연하지만은 않은 말들, 혹은 당연한 말이라도 새로운 길로 돌아가 경이롭게 인식하게 하는 글을 이 책에서 자주 만났다. 읽는 내내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고 열정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아마 그건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뿐만은 아니어서일 테다. 삶, 사랑, 청춘, 열정, 의지, 인정, 고통, 힘, 노력, 욕망, 버팀 등 인생에서 중요한 키워드가 글쓰기 이야기에 함께 녹아들었기 때문 아닐까. 글쓰기에 대한 팁을 얻으려 왔다가 삶에 대한 통찰의 조각들을 주워 온다.
그렇다고 글쓰기에 대한 자세한 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이야기 속에서 보물을 발견하듯 그렇게 하나씩 주우며 읽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시선'에 대한 중요성을 익히 들었고 구체적으로 그걸 어떻게 지녀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저자가 아주 쉽게 이야기해 주었다. 시선의 힘을 드러내는 게 글쓰기라면, 그 시선은 바로 자신만의 맥락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꽃이 예쁘다'라고 쓸 게 아니라 하필 오늘 이 상황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왜 그렇게 느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 여기에 미리 '행복' 같은 어떤 기준을 정해 시작하면 대상에 대한 옳고 그름으로 규정될 뿐이어서, 있는 그대로의 그 대상에서 출발해 보라는 것. 이런 식으로 글쓰기 팁도 그 만의 방식으로 이야기해 주어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은 것 마냥 설레곤 했다.
하나로 꼽기 어렵지만 지금 나의 상황에서 제일 공감되었던 것은, 글이든 삶이든 결국 자기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이었다.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자기 스타일을 알아가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하든, 내가 어떤 스타일인지를 빨리 알아차릴수록 잘할 수 있고, 나아가 삶도 자기다운 삶으로 만들 수 있다. 사랑을 하든, 공부를 하든, 사업이나 일을 하든, 글쓰기나 예술을 하든, 우정을 맺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든, 삶의 어느 시점부터는 자기 스타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 자기에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면, 끊임없이 세상의 온갖 말들과 남들의 방식에 휘둘리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게 자기 스타일을 알아가려면 무엇보다도 성취의 경험이 필요하다. ... 아주 작은 성취여도 좋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이 순간만큼은 나의 방식이 옳다는 경험들이 누적되어 삶 속에 작은 확신을 이루고, 그런 확신들이 모여 자기의 스타일이 된다."
그렇게 모인 좋은 삶이 곧 좋은 글쓰기를 가능케 한다. 그 좋은 삶은 대단한 경험을 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고 저자는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깨달았다. 내게도 유별난 경험은 없어 종종 그런 경험을 가진 이를 부러워했고, 마치 내가 그 특별한 상황에 놓이면 대단한 글을 쓸 거라고 착각했다. 저자도 어렸을 땐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하는 좋은 삶은 "내가 놓인 이곳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견뎌내며, 이 하루하루를 잘 살아내고자 하는 의지와 관련" 되어 있다고 느낀다고 한다. 그렇게 "좋은 삶을 살고 싶은 마음"도 쌓아간다고. 결국 좋은 글쓰기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내게 놓인 삶에 대한 온전한 충실함"이라 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으면 좋은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하루하루 충실해야 한다는 것.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가 아닌, 저자의 '그렇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따라가다 보니, 여러모로 글쓰기는 좋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읽은 글쓰기 책들 중 유일하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제외하면, 작가들은 "글은 매일 쓰면 좋아진다"라고 한다. 이 책에서 "계속 쓴 사람만이 글을 잘 쓰게 된다"라는 말 역시 잘 쓰고 싶은, 계속 쓰고 싶은 의지를 북돋아 준다.
"나중에 더 멋진 열쇠가 생기지 않는다. 열쇠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고, 지금 여기에서 열기 시작한 사람이 언제나 앞서가는 것이다. ... 계속 쓰면 더 깊고, 더 아름답고, 더 멋진 창고의 열쇠가 주어진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열쇠와 깊은 창고에 관해 알 거라고 생각한다."
그 열쇠로 깊은 창고를 열고 싶다.
그렇다고 글쓰기를 열심히 하라고 하진 않는다. 오히려 글쓰기든 삶이든 '그저 들어온 것을 잘 나가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덜어진다고 한다. 내 감각으로 들어온 것을 잘 나가게 만드는 일, 그게 글쓰기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힘든 일 같지도 않다. 그렇게 재능보다는 "어느 시절에 정해진 마음"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저자. 그 마음으로 계속 쓰는 일이 좋은 글쓰기와 좋은 삶을 가져다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글들이 참 맘에 들었다. 은연중에 글쓰기가 삶과 동떨어져 있는 행위라는 느낌을 지우지 못했는데, 이 책 덕분에 그런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책 읽기를 끝내기 못내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이렇게 쌓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그런 마음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그동안 완성하지 못했던 글을 오늘 완성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