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을 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누군가에겐 평생 노력해도 누리지 못할 것들을 그저 '#일상' 태그 하나에 매일 같이 아주 쉽게 담아낸다. 그런 삶은 꿈만 같을 것이다. 미국에 살며, 뭔가를 배우긴 하지만,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우아한 레스토랑과 금발의 외국인들을 배경으로 그녀는 환하게, 자신 있게 미소 짓는다. 한 번씩 듣도 보도 못한 섬으로 여행을 가고, 값비싼 선물을 받기도 하며 와인파티를 열기도 한다.
랜덤으로 뜨는 다른 피드도 눌러본다. 어느 28세 여성이 고독사 했다는 TV 프로그램의 장면들. 노력해도 안 된다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무거운 댓글들. 시시때때로 바뀌는 정사각형들 세계엔 양극단이 그렇게 촘촘히 붙어 있다. 현실은 그 양극단의 더 끝에 존재할 터.
인류 시대 이래로, 그러한 양극단은 늘 있어왔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평등을 이루기 위한 모든 시도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뿐이었다. 아직까지는.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라지지 않을 계급 차, 빈부격차, 양극단... 뭐라 이름 붙이고 바뀌어도 매한가지다. 경제/사회학자들은 그걸 해결하려고 부단히 애쓰지만, 그냥 심플하다. 그렇게 태어난 것뿐. 소위 사회적, 경제적 위치가 높은 이들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물질적, 비물질적 유산을 물려받고 많은 방면에서 여유롭다. 아등바등 살다가 다른 무언가를 잃곤 하는 여느 하층의 삶과는 달리, 별로 잃을 것 없이 재미있게 사는(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일상을 보는 순간,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의 빛에는 장님이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
그럼 '안 보면 그만이지' 하며, 오랫동안 사진첩 그리고 소통의 장으로 활용했던 인스타그램을 탈퇴한 적이 있다. 그러고 몇 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다 이 소비사회에서 호구가 되지 않는 방법 중 하나가 인스타그램으로 정보를 확인하는 것임을 알고 다시 검색용으로 사용했다. 블로그가 체험단, 광고글로 도배되는 반면, 인스타그램은 그나마 실시간 반응을 볼 수 있었다. 무언가를 사용(경험)하는 사람들과 그 일상의 장면을 미리 보며 고민해 볼 수 있고, 가끔 댓글로 물어볼 수도 있는 게 편리했다. 확실히 블로그 세계와 인스타그램 세계는 조금은 분리되어 있음을 느낀 게, 사람들의 관심사 자체가 다른 듯했다. 둘 다 참고하여 내 기준에 맞는지 따져 상품/서비스/경험을 구매하는 것 역시 합리적인 소비 아닐까 싶었다.
그밖에도 활용할 거리는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면, 아카이빙 목적으로 인스타그램을 활용하는 것. 좋은 글, 읽고 싶은 책, 가보고 싶은 곳, 늘 어려운 옷 착장, 인테리어, 헤어, 또 보고 싶은 영상 등 온갖 실용적이고 재미있는 세상의 한 컷들을 이후에 다시 들여다보기 좋게 정리할 수 있다. 식물이란 관심사를 공유할 '식친, 인친'도 생겼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현실 친구가 되기도 했다. 나이도, 환경도, 너무나 다른 그녀와 오로지 관심사만으로 친구가 되었고, 많은 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도 가졌다.
그러니 인스타그램은 잘못이 없다. '#일상'도 마찬가지다. 나도 그랬을걸?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겐 조금이나마 독이었을지도 모른다. 돈, 종교, 영향력이 그러하듯, 그걸 휘두르고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이니까. 수단으로써 좋은 점을 최대한 써먹고, '이런 것도 있구나, 저런 삶도 있구나' 하면 그만. 그러고는 신경은 다시 내 것, 나의 지금, 내 주위, 내 사람, 내 일상, 내 행동, 내 인생에 더 쓰면 되지 않을까.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으면서.
맞다, 이번에도 약간의 박탈감을 느낀 오늘의 나에게 건네는 말이다. 내가 가진 빛을 내게 진실로 중요한 곳에만 비출 수 있는 지혜를 끊임없이 갈구해 본다. 그러다 보면 생기지 않을까, 그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