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에 대한 이야기
그도 MZ 세대에 속한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자신을, 자신의 일상을, 자신의 생각을, 그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것도 MZ 세대의 특성 중 하나라면 말이다. 그 흔한 SNS 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 한둘이겠냐마는, 그는 그런 일에 전혀 취미가 없다. 그의 시니컬함이 한몫하는 듯.
어릴 적부터 그는, 자기 주변이 모두 시시하고 유치하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학생의 본분은 잊지 않았고, 독특한 승부욕 덕분에 반장을 도맡아 하고 내로라하는 특목고에도 진학할 수 있었다. 독특하다고 하는 이유는, 그 승부욕 때문에 뭔가를 잃기도 한다는 점 때문이다. 그럭저럭 공부 좀 하는 애들 틈에선 그 승부욕이 성적 면에서 효과가 좋았으나, 자기 같은 애들만 모아 놓은 곳에서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한두 차례 승부를 보고 난 후 공부에는 아예 손을 놓아 버린 것이다. 그때 대하소설 같은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아마 지금 남아 있는 그의 문학적 소양은 그때 다 쌓은 것이리라. 결국 '인 서울'은 했지만, 자신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때부터 '취업이 어려운 시대'라는 말은 늘 있어 왔지만, 그는 당시 엄청난 위기라고 생각했고 졸업하자마자 허겁지겁 취업부터 했다. 적성이고 뭐고가 어딨어, '그 집 아들 취업은 그래서 했대?'에 대한 답이 더 중요했던 시기. 그렇게 한 직장에서 십 년 넘게 일을 하고 있는 그는 몇 차례 승진도 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일요일마다 출근하기 싫다면서도 단 한 번의 지각/결근도 없이. 일단 출근만 하면 정성을 다해 일하는 그의 성격상, 그리고 그의 독특한 승부욕 덕분에 자기 동기들보다 빨리 승진하고, 그 안의 순위 매김에서도 늘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런 그에게 그의 회사는 다양한 보상을 제공한다. 그는 덤덤하게 받으면서도 내심 그 보상들에 만족감을 느끼는 듯하다. 늘 더 나은 어딘가에 도달하고 싶으면서도 현재에 만족하기도 하는 여느 직장인의 모습.
그런 그도 재미없게 사는 것 같지는 않다. 남의 삶에 그 누가 재미있다 없다 논할 수 있으랴. 그에겐 자전거가 있고, 신뢰할 수 있는 동료가 있으며, 오래되어 깊어진 친구가 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자신을 늘 지지해 주며, 퇴근 후 아이를 재우고 마시는 시원한 맥주가 있다. 가족 여행을 다니며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그렇게 행복을 채워간다. 그렇다고 현재의 삶에 완전히 만족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고민, '은퇴하고 뭘 하지', '대출금리가 오른다고, 이런' 같은 걸 늘 안고 살지만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나는 좀 더 내가 어렸을 때는 책을 많이 읽는 사람과 말이 잘 통하고 배울 게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렇게 다독가는 아니면서, 그런 사람은 적어도 자기 삶을 잘 살려는 의지가 있는 것으로 봤다. 하지만 오랜 시간,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제대로 산다고 할 수 없는 예시와 책을 즐기지 않아도 자기 삶으로써 보여주는 예시를 보는 횟수가 늘어났다. 후자가 바로 그 남자다. 그는 어쩌다 책을 읽고 싶을 때는 장르문학을 추천해달라고 한다. 그럼 나는 켄 리우 같은 작가들의 책을 추천해 준다. 그에게 시간은 부족하고, 쌓인 스트레스는 풀어야 하니, 남은 시간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그에게 책은 곧 쉼의 종류 중 하나이며 그게 당연하다.
사는 게 뭘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게 내 인생의 풀리지 않는 물음이라면, 그에게 그런 질문은 허황된 것인지 우리는 그런 대화는 잘 하지 않는다. 그런 고민 자체가 그에겐 사치라는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말, "사는 게 그런 거지"를 가끔 읊는 그는 자기 말대로 그저 산다, 열심히 때로는 편안하게, 대체로 시니컬하게. 깊게 고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하면 뭐하나 싶은 것 같다. 물론 다 나의 추측이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내가 본 사람들 중 가장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으스대는 자만이 아니다. 그는 은연중의 대화, 행동, 불쾌한 상황 / 위기 상황에서의 태도 등을 통해 높은 자존감의 냄새를 폴폴 품긴다. 치솟을 만큼 행복한 순간에도 그는 덤덤한 겸손을 내비친다. 역경을 만나면 나는 모든 면에서 쉽게 무너지는 반면, 그는 그저 그 순간을 차분하게 대하며 꼿꼿하게 서있다. 해야 할 것들을 해내며, 극복한다기보다 그저 그곳을 지나간다, 시니컬하게. '잘될 거야' 하며 억지로 긍정을 짜내지 않아도 그는 정말 그럴 거라고 알고 있는 듯 행동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가 믿고 행동한 대로 일이 잘 풀렸다.
그런 그에 대해 생각하다, '사는 게 뭘까' 고민하는 동안 삶은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싹하여 그에 대해 적어본 것이다. 책 속의 휘황찬란한 이야기 같은 인생은 아니더라도, 자기 앞의 생을 조용히 그러나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 대놓고 우왕좌왕하지 않는 올곧음. 변덕스럽지 않은 묵묵함. 시니컬한 표정으로 '사는 게 그런 거지' 하면서도 스며 나오는 자신에 대한 믿음. 그에게 '사는 게 그런 거'란 '그럴 수도 있음'일 터. 내게도 지금은 그런 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 결국 '사는 게 뭘까' 계속 묻고 '아, 이거다' 하는 순간 오히려 거기 갇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네가 정겨운 밝음을 뚜렷이 보는 곳, 너에게 속하는 곳, 너 자신만을 믿는 곳으로 가라. 오로지 아름다운 것, 선한 것만이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곳으로, 외로움으로! ㅡ 거기에서 네 세계를 창조하라."
<파우스트> 중
그렇게 각자의 "정겨운 밝음을 뚜렷이 보는 곳"이 있을 테고, "너에게 속하는 곳"이 있을 테니 "너 자신만을 믿는 곳으로 가라"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 어떤 책도, 다른 이의 삶도, 영화도, 온라인 속 장님 코끼리 만지듯 엿보는 타인의 이야기도 참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내가 속하는 곳이 되어 줄 수는 없는 법. '어떻게 살까' 고민만 하다 끝나는 자기 삶을 조롱하며 생을 마감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어느 때엔, 그저 뚜벅뚜벅 살아가는 시간이 힌트가 되어 줄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시니컬하게. 그럼으로써 어떤 유예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내 상념은 아직도 '이건가? 아니 저건가?' 조용히 그리고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