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근사한 음식을 먹은 날, 집에 돌아오면 나는 국시기가 먹고 싶어 진다. 경상도에서 먹는 김치국밥 같은 음식으로, 육수에 김치를 푹 끓이고, 식은 밥 한 주먹에 소면 한 움큼을 넣어 주면 된다. 냉장고에 콩나물이나 떡국떡이 있다면 그날은 국시기 먹기 딱 좋은 날. 고구마까지 댕강 썰어 넣어주면 금상첨화다. 다리를 한 짝 접어 올려 앉은 다음, 국시기 한 사발 들이켜고 나면 그제야 몸도 마음도 더없이 편안해지는 것이다. 시큼 칼칼하면서 구수하고 묵직한, 그 뜨끈한 국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식도를 타고 깊은 어딘가에 닿는 순간, 꼭 필요한 것을 드디어 찾은 듯한 충만감이 들곤 한다.
언제든 먹고 싶을 때 뚝딱 만들 수 있는 것은 국시기가 부엌에 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대충 넣어 만든 모습이어도 그 맛은 천차만별이다. 국시기 맛에 제일 중요한 것은 당연히 주재료인 김치인데, 어렸을 적부터 우리 집은 고모 네에서 직접 농사지은 배추, 고춧가루, 무로 만든 김치를 얻어먹었다. 그 특별한 맛을 잊지 못해 김치가 떨어질라치면 고모 네에서 공수해온다. 고모는 늘 직접 농사지은 쌀이며 사과며 김치며 아낌없이 퍼주었다. 그렇게 구해온 고모네 김치는 아껴 먹다 바닥이 나면 이내 아쉬워져, 잘라 놓은 심지까지 묵혀 두었다가 김치 국물 요리에 쓴다. 그 하찮아 보이는 꼭지에서 기가 막히게 개운한 맛이 우러난다.
김치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소면인데, 국시기가 완성되기 5분 전 있는 그대로 넣어야 한다. 그래야 그 얇고 딱딱한 막대기 같은 게 흐물거리면서 소금기가 녹아 나오는데, 그것이 국시기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것이더라. 그 감칠맛이 없다면 온갖 좋은 것들로 만들어진 고모네 김치도 기세를 잃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독립한 이후로 부엌 찬장에 엄마가 늘 쓰던 노란 봉지에 담긴 소면을 쌀독 채우듯 꼭 채워 둬야 했다. 위로가 필요할 때 언제든 맛있는 국시기를 끓여 먹기 위해. 국시기만 있으면 밖에서 위로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고, 늘 있는 재료로 손쉽게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젓가락으로 콩나물과 소면을 한데 건져 후루룩 마실 때 온몸에 온기가 돌면서 나는 물리적이고 오래된 위안을 얻는다.
어렸을 적부터 국시기를 좋아한 것은 아니다. 엄마는 자주 국시기를 끓여 끼니를 해결했다. 국시기를 좋아한다기보다 익숙해졌다는 게 맞을 것이다. ‘엄마가 내게 해 준 게 뭐지? 아빠는 도대체 밖에서 무얼 하는 걸까?’ 부모에 대한 원망이 스멀스멀 자라나던 시절이었다. 아이는 빨리 어른이 되어 고향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공부를 했고, 이윽고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며 물 만난 고기처럼 뛰놀았다. 그러나 살아가는 일은 무언가를 벗어나기 위해 하는 일이어선 안 된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누군가는 무언가를 향해 가고 있는 동안, 나는 ‘드디어 벗어났다’ 안도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저 벗어나는 것에 목표가 있는 삶은 어딘가 초점을 잃게 된다. 전공은 맞지 않고 어두운 미래만 떠오르던 20대 시절, ‘남들은…’ 하며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며 끝없이 불행을 만들어내던 내게, 역설적으로 국시기라는 별것 아닌 음식이 버티어 살아갈 힘을 주었다. 시간을 함께 건넌 것에는 그런 힘이 있는 것인지,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던 무언가가 도리어 나를 일으켜 준 것이다. 나와 맞지 않는 옷을 하루 종일 입고 집에 와서는 국시기를 먹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고 뭐고 국시기 하나면 어떤 설움도 잊었다. 마치 펑펑 울고 나면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처럼, 후루룩후루룩 건더기를 건져 먹으며 뜨거운 숨을 내쉴 때마다 마음의 응어리도 녹아내렸다. 붕 떠있는 몸을 뜨듯하게 적셔 주어 이 땅에 발 딛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 유일한 음식이 바로 국시기다.
일곱 살 무렵의 부모님 나이에 나도 어느덧 들어섰고, 일곱 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그 당시 무서워 보였던 엄마도 그저 삶을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발버둥 쳤던 한 여자였을 뿐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집에 자주 오지 않는 아빠 역시 그저 실패한 사업을 어떻게든 일으켜 보려 했을 한 남자였을 뿐이라는 사실은 묘한 안도감마저 준다. 엄마는 그 시절 자기만의 불안을 잠재워 줄 음식을 해 먹었던 건 아닐까. 그 수많은 국시기로 때운 끼니가 온갖 어려움에도 꿋꿋하게 아이들을 키울 힘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어렸을 적 아무런 짐도 없이 살아갔던, 그녀만의 자유로운 시절을 떠올리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여유롭지 못한 생활에도 자식에게 부족함 없이 해주려고 애쓰고 국시기로써 자신을 위로했는지도, 또 그렇게 밖에 사랑을 표현할 방법을 몰랐을지도 모른다. 국시기는 그녀의 몸과 마음이 으스러질 때 그녀를 다시 일으켜 주는 유일한 보상이었을 것이다. 마음이 괴로운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국시기나 끓여 먹어야겠다’하며 애써 자신을 달래고서 마음의 먼지를 훌훌 털어냈을 것이다.
아직 몰라도 되는 것들에 둘러싸여 자라기만 하면 되는 그 시간, 그리고 나를 자라게 한 많은 것들. 그것들에 이름을 붙이자면 내게는 그저 국시기라고 삭쳐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국시기가 특별히 귀하고 맛있는 음식 이어서라기 보다 시간이 쌓이면서 함께 쌓여간 것이기에 소중한 것이다. 국시기 같은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애썼던 내 미미한 역사는 곧 국시기로써 포용되었다.
노고를 들여 농사지은 것들을 타인에게 베푸는 마음,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밥을 해먹이고 사랑을 주며 일상의 시간을 함께 건너는 것, 흔하고도 오래된 것의 위로, 그 모든 국시기가 그 아이를 온전한 어른으로 키웠다. 그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새로운 물건, 경험이 아니라는 걸 차츰 알아간다. 감사, 행복이라는 게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마음에서 억지로 끌어올리는 무엇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는 요즘. 늘 곁에 있는 재료로 시간과 함께 온기와 실물로써 하나씩 쌓아가는 것임을 배워간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우중충하고 흐린 날이면 꼭 국시기를 끓인다. 비로소 그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엄마, 아빠가 뭘 해주었냐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국시기 맛을 알게 해 주셨지.”
그리고 오늘은 국시기가 또 필요한 날.
딱 한 그릇만큼만.
첫 도전이었던 공모전에 이 글을 냈으나 보기 좋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첫 술에 뭘 기대했을까. 첫 도전 그 자체에 의미를 두자던 당찬 그 여잔 어디로 갔나.
힘낼 것이다. 지레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고 이게 뭐냐며 호들갑은 더더욱 떨지 않을 것이다. 조금 주눅 든 나 자신을 위한 푸짐한 위안을 끓여 대접할 것이다.
‘저 괜찮아요. 정말 괜찮아요. 정말이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