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서 시작'하는 삶

한 '엔프제'의 여백의 시간

by PHILOPHYSIS

요즘 '나에서 시작'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무슨 일이든 나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공허함은 언제든 찾아온다고 믿는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특히 그런 유형이다. 언젠가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상상하곤 한다. 만약 구체적으로 구축해야 할 때가 와도 ‘나에서 시작’해야함을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저기 멀리서 멋지고 쿨하게 신비주의로 가는 브랜드가 좋아 보여도, 내가 신비주의와 거리가 멀다면, 그렇게 꾸며낸 브랜딩은 진정성뿐만 아니라 매력을 잃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재미가 없어, 하다 말 것 같기도 하다.


MBTI의 진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나도 세 번이나 했는데 신기하게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그런 게 있다고 듣고 두 해 전, 올해 초, 어제, 모두 ENFJ-T(이하, 엔프제)로 매번 똑같이 나왔다. 내심, 힙한 요즘 사람들에게 많아 보이는 인프피(INFP)가 한 번은 나오길 바랐는데.


무엇보다 나는 정의롭고 싶지 않은데 자꾸 정의로운 사회운동가래. 두 차례 검사했을 때, '에잇 뭐야, 안 맞잖아'하고 화면을 껐는데 어제는 강점, 약점, 진로, 결론까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맞지 않는 것도 몇 있었지만, 대부분 맞아 놀라웠다. 내 장단점이 글로 정리되어 있고, 나라는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은 사람이 그래도 어떤 유형에 속한다는 게 묘하게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나는 정의로운 사회운동가 유형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타협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과거를 떠올려 보니 종종 그런 말을 듣긴 했다.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게 부러워요." 또 대학생 때는 단순히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으로 총학생회, 총여학생회 활동을 했다. 또 사람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애정은 없는 편인데(사람 많은 곳은 특히 질색), 이상한 나만의 인류애 같은 건 있다. 그것도 엔프제의 특성이더라. 아직은 막연하지만,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서 내가 잘하고 좋아할 만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다. 그런데, 나는 수익을 중요시하지만, 보통 엔프제 성격을 지닌 사람은 거기에 가치를 두지 않으며, 공공기관이나 비영리 기관 리더 중 많다고 하니 그 부분은 나와 맞지 않았다. 나는 수단으로써의 돈을 매우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이다.


소름 돋았던 것은, 자기 자신에게 의미 없다고 여기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부분. 취업이 잘 된다고 해 수능 점수에 맞추어 들어간 간호학과 졸업 후 간호사가 된 것부터 시작해, 몇몇 직업을 경험하며 방황해 온 시간이 뭔가... 단순 변덕과 우연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는 '버티는 게 능사, 존버' 이런 말이 결코 통할 수 없는 사람임을 증명 받은 기분이기도 하고.


요즘 드는 생각은, 남에게 하찮아 보이는 일도 내가 거기서 무엇을 배우고 이후 '나만의 의미 있는 일'을 하게 될 때 자양분이 될 거란 판단이 든다면 무조건 해볼 것. 누군가는 '저 일하려고 대학 나오고 (...) 공무원 퇴사했냐'라고 해도 그 작은 일이 내게 일말의 의미라도 만들어준다면 해볼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는 오래니까. (근데 놀라운 것은 엔프제가 남 신경 많이 쓴다고.)


어쨌든 지금 내 퇴사 후 여백의 시간(누군가는 '유예시간'이라 부르더라, 그것도 좋네)에 좀 더 깊이 나를 알아가야겠다. 이젠 무얼 하든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은 앞으로도 쭉 변치 않을 것 같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내 삶의 중심은 이것이다, 하는 것들을 정립 중이다.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해 바깥 원으로 뻗쳐 나가는 행동과 결과물을 이끌어내고 싶다. 결국 창업이든, 책이든, 플러스알파든, 그 삶의 중심을 지키며 살아가게 하는 수단일 뿐이니까. 나로부터 시작하여 나답게 사는 것을 지키지 못하는 부자, 저자, 알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모든 게 엔프제의 특성대로 너무 이상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특성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렵다고, 잘 모르겠다고, 너무 이상적이라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생각하고 움직여 나에게 맞는 것을 하나씩 갖추어 나가자' 주의다.


그래서 내 삶의 중심이 뭐냐고?




<왜 사니>

- 한 번 사는 인생, 즐겁게, 행복하게 살다 후회 없이 가고 싶어. 아름다운 것들을 누리면서.

- 그러기 위해선 내가 주도하는 삶을 살고 싶어. 내가 기준인 삶, 그리고 창조적인 삶을.

- 이루고 싶은 걸 세우고, 해내는걸, 살면서 한 번은 해보고 싶어.

- 내가 만족하는 나, 그리고 내 삶을 위해.

- 원하는 일을 이루고, 사랑하는 가족과 건강, 내 일에 균형을 얻었을 때 나는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해.

- 그 원하는 일이란 일종의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고, 그게 사람들에게 또 다른 이득이나 영감을 줄 수 있으면 좋겠어. 유형의 혹은 무형의 것으로써.


<그러려면 어떻게 할 건데?>

- 무의미한 데다 하기 싫은 일은 끊어내고,

- 원하는 삶을 찾아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살 방법을 찾아야겠지.

- 책, 사람 등을 통해 배우며 힌트를 얻고 길을 찾자. 돈을 주고 배우기도 하며.

- 무엇보다 해보지 않으면 몰라. 도전해 보자. 그렇게 가능성을 하나씩 타진해 보는 거지.

- 창업을 계획하고 실현도 해볼 거야. 목표는 단기, 중기, 장기로 세워보자.

- 그렇게 작게라도 시작해 볼 예정이야.

- 초기 자금은 모아야겠지. 내가 창업하고 싶은 분야의 알바도 기회가 되면 해볼 거야.

- 삶의 중심을 곧게 하기 위해 책도 계속 읽고, 글도 계속 쓰자.

- '나=만족하는 삶=아름다움=주체적 삶=내 브랜드' 이런 식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들을 수집해보자.

- x 분야 공부(이건 아직은 비밀 ㅎ 바뀔지도 몰라.)


<그리하여 하고자 하는 바, 기간별로>

- (이건 너무 디테일해서 노트에만 적었다.)




지금까지의 생각을 투박하게 끄적여 본 초안 수준이지만, 앞으로 더 진정성 있고 내게 맞는 방향으로 수정해 나가면 된다.


이 여백의 시간이 때론 불안으로 가득 차기도 하고 조급해질 때도 있지만, 대체로 재미있다. 여기 계속 머물고 싶은 유혹마저 들 만큼.


나에 대해 알아가고, 배우고 싶은 타인의 삶을 통해 내 삶에 벤치마킹할 것들을 습득하기도 하며. 무엇보다 내 삶의 중심에 대해, 즉 삶에서 추구해야 할 나만의 신념, 가치, 방향성을 생각해 보고 적어보는 것만으로도 더 명확해진다. 적어도 후회 없는 40대, 50대, 60대를 맞이할 자신은 조금씩 생긴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남에게 하듯 나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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