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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ILOPHYSIS May 09. 2022

아들을 타인처럼 응원하기

오늘 아들은 그의 생에 처음 치아를 뽑았다. 처음이라 치과에 데려갔는데 진료 2분 만에 쏙- 뽑았다. 아들에게 우린 “진정한 형아가 된 걸 축하한다” 하며 주말 동안 얼마나 사기를 북돋아 주었는지. 덕분에 아들은 치아가 담긴 플라스틱 상자를 행복하게 흔든다. 그 뿌듯한 미소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지난겨울 어느 날, 아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간 적이 있다. 거기서 모르는 남자아이와 자연스럽게 놀게 되었는데, 그 아이는 아들보다 한 살 더 어렸고 조금 더 컸다. (아들은 키/몸무게 백분위에서 1-2프로 정도로 작긴 작다.)


놀다가 “야” 하면 그 아이의 할머니가 “야가 아니라 형이지”라고 고쳐 주었다. 몇 번 스스로 고치더니 나중엔 “형인데 왜 나보다 작아?”라고 물었고, 그의 할머니는 “아이참 그렇게 말하면 안 돼”하며 당황스러워했다. 나와 남편은 웃으며 그 아이에게 “아~ 그런데 형아 아빠도 엄마도 이렇게 커서 형아도 이제 금방 클 거야”라고 말해 주었다. 우리는 남몰래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좀 더 놀다 집에 올라왔고, 나는 아들이 조금이라도 상처받진 않았을까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아들에게 “아들, 아까 같이 놀던 동생이 그렇게 말해서 좀 속상했겠네?” 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나 아들의 대답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키가 큰 동생도 있는 것처럼, 키가 작은 형아도 있고, 키가 큰 형아도 있을 수 있지. 하나도 안 속상했는데. ”


네 말이 정말 맞네” 하며 나는 아들을 꼭 안았다.


어른들끼리만 민망했던 아이의 순수한 질문과 순수한 답. 왜 작은지 물었을 뿐이고, 그럴 수도 있다고 받아들인 그 세계를 내가 이해하지 못한 걸 수도 있다. 이건 이래야 하고 저건 저래야 한다는 꽉 막힌 기준이 내게도 콕콕 박혀 있음을 확인하고는 또 씁쓸했다.


문득문득 아들은 어른보다 어른처럼 말을 한다. 그런 것들이 내가  아들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을 깨운다.


그래서 아들을 더 응원하게 된다. 태권도 빨간 띠를 따게 돼서 넘 축하해. 이가 흔들린다니 이제 진짜 형이 되려고 하나보다. 아무나 이 안 흔들리는데. 와, 이를 뽑아서 이제 진짜 멋진 형이 되었네. 박수. 오늘 진짜 용감했어, 아들.


그런데 그렇게 말할수록 아들이 정말 그렇게 된다. 용감해지고 멋진 행동을 척척 해낸다. 예를 들면서 아들 자랑하는 기술 : 아들 친구의 엄마가 같이 축구교실 보낼 생각 없냐 해서 나는 일단은 태권도로 충분하다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고도 내심 ‘아, 나도 좀 이것저것 시켜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올라와 아들에게 “아들, ㅇㅇ엄마가 축구교실 같이 들을 거냐고 묻는데 해볼래? 아님 수영? 바이올린? 배우고 싶은 거 없어?!” 하며 물었다. 그런데 아들 왈, “엄마, 나는 태권도 검정띠 다 따고 골프 배워 보고 싶은데.” 엄마는 또 할 말을 잃었다.


어느새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다음 것까지 스스로 정하다니 참 대견했다. 그래,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누군가는 그 나이엔 물어보고 정할 때가 아니라 부모가 이것저것 해줘야 할 때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러고 싶진 않다. 나는 내적 동기의 힘이 제일 강하다고 믿고, 그걸로 일구어낸 작은 성공 경험을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의 육아/자녀교육 고민은 그래서, 별로 없다. 배부른 말이지만 정말 그렇다. 실은 무지 큰 문제가 떡하니 버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건 바로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나도 아직 나의 길을 스스로 정하는 중이기에. 아직도 잘 모르겠는 제일 어려운 분야. 그렇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 주고 그에 대해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아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것이리라 믿는다. 나를 키우는 과정이 곧 아들을 잘 키우는 과정임을 믿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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