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이 책을 읽다가 말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큰 갈등이나 화려한 에피소드 없이 흘러가는 줄거리는 다른 흥미로운 책들에 시간을 빼앗겨(?) 잊히기 십상이다. 실제로 중간에 그런 이유로 지루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근데도 신기하게 며칠 지나면 또 생각나는 책. 그렇게 야금야금 읽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휴남동이라는 가상의 동네에서 '휴남동 서점'을 배경으로 어딘가 익숙한 상처를 안은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어떤 계기로 자기답게 사는 방법을 찾아가는, 비로소 자기 삶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상처는 좋아하는 일에서의 좌절, 이혼, 무의미한 삶의 지속, 차별, 관계 속의 절망 등 다양한 모습이면서 현실적이고 흔해서 애처롭다.
어쩌면 등장인물 모두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을 하나씩 깨고 나와 자신만의 기준을 찾고 세워가는 과정을 보여주어 내가 더 흥미를 가졌는지 모른다. 우리는 어쩌다 일정한 시기에 일정한 곳을 통과하여 일정한 어느 위치에 이르러야 하는 걸까. 이러면 실패하는 거고 저러면 성공하여 잘 사는 것이고, 그런 기준은 어쩌다 생겨 났을까. 잔잔하고 편안한 이야기로 그러한 패턴의 근원부터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다.
그래서인지 공감이 되는 문장이 참 많았다. 인물들의 고민이 담긴 대화가 때로는 마음에 콕 박히기도 했고, 때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며 생각을 바꿔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 물음을 던진다. '즐거움이 빠진 꿈'이라도 괜찮을까. '영원히 지속되는 꿈과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어느 꿈에도 집착'하는 것 역시 부정적일 수 있음에 대해.
"건강하게 일하지 못했던 과거가 저는 많이 후회돼요. 저는 일을 계단 같은 것으로 생각했어요. 제일 꼭대기에 도달하기 위해 밟고 지나가는 계단. 하지만 실제 일은 밥 같은 거였어요. 매일 먹는 밥. 내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끼치는 밥이요. 세상에는 허겁지겁 먹는 밥이 있고 마음을 다해 정성스레 먹는 밥이 있어요. 나는 이제 소박한 밥을 정성스레 먹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를 위해서요."
계단 같은 일. 나도 일을 그렇게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건강하게 일하지 못했던 걸까. 지난날의 내 일과 그에 따른 삶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보게 하는 인물 간의 대화가 흥미롭다. 나는 어땠나, 지금은 어떠한가, 그리고 이후에는 그럼 어떠하고 싶은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충분할까. 읽으면서 일기장에 끄적여 본 것도 여러 번.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다 행복하진 않아. 좋아하는 일을 좋은 환경에서 하면 모를까. 어쩌면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네.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다면, 좋아하는 일도 포기하고 싶은 일이 되어 버리거든. 그러니 우선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그럼 무조건 행복해질 것이다, 라는 말은 누구에겐 해당되지 않을 수도 있어. 어쩌면 너무 순진한 말이기도 하고."
'오로지 좋아하는 일'에는 정말 순진한 데가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말에 공감이 많이 되었다. 앞으로의 방향 설정에도 잊으면 안 될 것 같아 마음에 깊이 새겨 두었다. 오고 가는 대화 속에, 한 사람이 인생에서 한 번은 하게 되는 일과 삶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렇다고 환경 탓만 하며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도 없긴 하지."
"미래를 어떻게 알겠어. 우선은 해보는 수밖에. 내가 그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면."
"삶은 일 하나만을 두고 평가하기엔 복잡하고 총체적인 무엇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삶은 미묘하며 복합적이다. 삶의 중심에서 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삶의 행불행을 책임 지진 않는다."
그리고, 아래의 밑줄을 언젠가 나만의 단어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운영해가면서 여러 생각과 감정들을 적절히 균형 잡아 보려고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본주의 시장 속에 있는 서점이면서 여전히 내 꿈의 공간이기도 한 이 서점을, 오래도록 살아가게 하고 싶어요. 서점과 책에 관해 계속 고민해 보고 싶어요."
"하지만 영주는 서점을 단 한 달 운영하더라도 이제는 안 되는 쪽이 아닌, 되는 쪽으로 희망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만 흔들리기로, 삶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기로, 앞으로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갈 거란 희망을 가지기로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내 삶의 단편을 한 번씩 더 살펴볼 수 있었다.
위기의 끝에서 시작하여, 단 2년만 운영해 보기로 한 휴남동 서점은 이제 그렇게 나아가기로 한다. 나도 저 밑줄에 무엇이 들어갈지 "희망, 희망 쪽으로" 다가가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