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의외로 스토리 자체로도 재미있어 놀란다. 푹 빠져들기 좋은 데다 오랜 시간 인정받은 예술 작품의 권위에 자연히 복종하게 되어 몰입하게 된다.
이런 예술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내 끄적임이 얼마나 하찮은지, 뭔 의미라도 있긴 할지 의심하게 된다. 그런 날은 즐거움을 느끼곤 했던 잠시의 끄적이는 행위에서 조차도 의욕을 잃기 마련이다. 그래도 용기 내어 한숨짓듯 끄적여 본다.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일로 뭔가를 이룬다면, 즉 성취라는 걸 해본다면, 그다음에는? 그다음 어떤 생활을 하고 싶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일상의 모습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어찌 보면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저 일상적으로 하며 지내는 것. 책을 읽고, 가끔 거기서 인생의 보물을 길어 올리고, 앞날을 새롭게 정비해 보며 종종 끄적이는 것. 나와 내 가족이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질 좋은 음식을 먹고, 종종 근사한 곳에 놀러 가고, 행복한 추억을 쌓는 것. 식물을 정성껏 키우며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 운동 후의 그 활력을 만끽하는 것.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 것, 등등.
그렇게 생각이 흐르니, 나는 이미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며 새삼스러워진다. 아님 내 상상력이 부족한 걸까. (상상은 하나씩 차차 보태기로 하고.) 이미 나는 '그 후'의 일상을 보내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한 가지 다른 것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그런 생활을 한다는 것. 그것이 큰 차이이리라. 그 차이 때문에 내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것이겠지. 성취를 이룬다 해도 겉으로 보이는 생활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인해,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떠올려 볼 수 있게 되었다.
확실한 것은 그런 '생활의 격차' 같은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 것은 일종의 부산물일 뿐이다. 오히려 단순하게 그저, 내가 하고자 하는 걸 ‘이루었다, 해냈다’ 하는 그 감각, 자아실현이라는 경지, 내적 욕구의 삼각형 맨 꼭대기에 닿아보고 싶은 열망 같은 거 아닐까.
사실 그 꼭대기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내게도 왔었다. 막상 그 꼭대기인 줄 알고 열심히 노력하여 올라가 보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닌 적도 많았다. 그러한 실망은 인생의 큰 전환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뭐,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수도 있었다. '그게 네가 원하던 거 맞아, 맞다고.' 허나 그러기엔, 나도 너무 나이를 먹어서 머리가 커져 버렸고, 동시에 너무 젊어서 채울 것도 많다.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우리 동네가 아직도 낯설다. 호우경보라는데, 아무 느낌이 없다. 번개가 번쩍. 연이어 천둥이 화난 듯 내리친다. 해가 중천에 떠있을 시각에도 하늘은 저녁처럼 어둡기만 하고, 안개비에 쌓인 이 동네는 더욱더 낯설어진다.
이런 날은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이거나, 이야기 속에 푹 젖어들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좀 더 지나가면, 내 시야에도 안개가 걷혀 더 선명한 '뷰'가 생길지도 모른다.
이렇게 적고 보니 오늘도 참 무의미한 글자만 잔뜩 뱉어 놓았다. 도돌이표처럼, 톨스토이는 진짜 천재라는 생각으로 되돌아온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모여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 같다. 사람 한 명 한 명이 입체적으로 존재하며 제 삶을 산다. 이를 글로써 창조해낸 톨스토이.
그렇게 경탄해 마지않으며, 책 속으로, 읽는 행위 속으로, 숨고 싶은 날이다. 혹여 단 한 줄의 인생유상의 증거라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