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면 재미있는 광경을 종종 보게 된다. 슬픈 광경이려나. 어쩌면 그건 나만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짙은 보랏빛의 정장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나이 지긋한 숙녀분이 자그마한 캐리어를 끌고 칸막이 문을 통과한다. 인상 좋은 눈매를 지닌 그녀는 마주 보는 긴 의자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향해 몸을 가지런히 정렬하고, 상체를 30도 숙인다.
그러고는 “임!영길 선생님, 임!영길 선생님” 쾌활하게 말하고는 마치 중요한 업무를 앞둔 표정으로 다음 의자 사이로 간다. 또 몸을 가지런히 정렬 후 인사. 정확하게 두 번 ”임!영길 선생님, 임!영길 선생님”. 그리고 기꺼이 그리고 비장한 걸음으로 다음 칸으로 이동한다.
그 짧은 순간 이 전동차 칸에서 제일 행복하고, 인생에 만족하는 이는 그녀인 듯하다. 맞은편 창을 통해 비친 내 표정 포함, 이 칸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 중 그녀보다 만족스러워하는 이는 없어 보인다. (지하철에서 그럴 일은 더욱 없지만.)
임영길 선생님을 대단히 존경하는 듯한 그녀는 자신의 이 숭고한 일에 자긍심을 느끼는 듯했다. 남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순간순간이 행복할 것이다. 그녀에게 공허감이라든지 과거나 미래 따위는 없이 오로지 ‘지금, 여기’만 있다.
그러나 보통은 임영길 선생님 외치며 지하철을 누비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 비슷한 행위가 아무리 행복을 준다 해도 말이다. ‘지금, 여기’를 의식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일 역시 중요하지만, 그 극단에는 임!영길 선생님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는 차라리 덜 행복해 보여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사는 것을 택할 것이다. 혹은, 아니 그래도 행복한 게 낫다며 그녀의 행복을 부러워할 것이다. (대개는 아무 관심 없다.)
한 가지 희망은 그 두 가지 모드 사이의 선 위에서 우리는 점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든지 때에 따라 모드 전환, 점을 이동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때는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며 행복이라 여기는 것들을 만끽하고, 또 어느 때는 지금 당장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 행동을 조정하면서 말이다. (‘지금, 여기’가 가장 속 편한 것은 사실인듯하다.)
그나저나 보랏빛 숙녀분은 집에 잘 들어가셨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