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고 또 흔들리면서, 미완의 희망을 품고.
흔들리는 마음으로 서 있던 내 눈 앞에, 성탄을 앞둔 도시는 나보다 먼저 기다림을 연습하고 있다.
성탄을 일주일 앞둔 도시에는 늘 같은 장식이 걸린다. 가로수마다 감긴 전구는 낮에는 투명한 혈관처럼 매달려 있다가, 해가 지면 하나둘 숨을 쉬기 시작한다. 아직 불이 완전히 켜지지 않은 시간, 도시 전체는 막 숨을 들이마신 사람처럼 잠시 멈춰 있다. 축제가 시작되기 직전의 고요, 설렘과 피로가 동시에 얇게 겹쳐진 시간이다.
횡단보도 신호등 위의 초록 인형은 남은 시간을 손가락으로 세듯 깜빡인다. 바람은 방향을 바꾸며 골목을 빠져나와 코트 자락을 건드린다. 꽉 조여야 할 단추 하나가 풀린 채로 남아 있는 느낌. 쓰러질 만큼은 아니지만, 분명히 흔들리는 마음 한 켠이 휑하니 느껴졌다.
길 건너편에 덩그러니 놓인 트리 하나가 빈 마음을 채운다. 낮은 철제 울타리 안에 갇힌 채, 사람들보다 먼저 겨울을 통과하는 나무. 가지마다 매달린 전구와 장식들은 바람에 부딪혀 작은 소리를 냈다. 음악이라기보다는, 오래된 집이 밤마다 내는 숨소리에 가까운.
잠시나마 시선을 그곳에 머무르기로 했다. 저마다의 일상으로 가득찬 부푼 설렘과 기대, 피로와 짜증을 안은 사람들이 길을 건너길 반복했다. 그 한가운데,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흔들리는 한 사람이 트리와 눈을 마주치며 서있었다.
"흔들린다는 것은, 불안의 다른 이름일까."
흔들리지 않는 것이 곧 안전하다는 말을, 나는 오래도록 의심하지 않았다. 뿌리가 약하면 흔들린다고, 바람을 견디지 못하면 쓰러진다고 배워왔다. 그런데 눈앞의 트리는 분명히 흔들리고 있었고, 부러지지 않은 가지를 보란 듯 드러냈다. 오히려 흔들릴 때마다 그를 감싼 전구의 빛은, 더 선명하고도 멋지게 번졌다.
주머니 속에서 휴대전화가 미세하게 진동한다.
어둠 속에 환히 밝혀진 화면을 곧바로 덮어둔다.
읽지 않은 알림이 그대로 남은채, 화면은 다시 검게 닫혔다.
결정은 여전히 문장 끝에 오지 않은 상태였다.
마음속에는 쉼표만 가득히 쌓인채, 마침표를 찍기에는 아직 공기가 차갑다는 핑계를 데웠다.
신호가 바뀌었지만 바로 건너지 않았다.
"늘 그랬듯, 네가 먼저 움직이도록 잠시 자리를 내어줄게."
사람들의 발걸음이 교차하고, 신발 밑창이 아스팔트를 스치는 소리가 짧게 이어졌다.
모두가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지만, 그 방향이 서로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각자의 하루를 마음에 간직한채로 빠르고 느린 모든 발걸음이,
희고 검은 땅을 지나 오색빛깔 들판으로 향했다.
카페 문을 밀자 청량한 경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유리문에 붙은 ‘Merry Christmas’ 스티커는 모서리 마저도 살짝 들떠 있었다. 커피 머신은 깊은 숨을 내쉬듯 김을 뿜었고, 창가에 앉은 사람들은 각자의 세계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노트북 화면, 책장, 컵 위로 피어오르는 김.
모두가 무언가를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끝나기를, 혹은 시작되기를. 어쩌면 잠시 멈추기를.
창가에 앉아 컵을 두 손으로 감싸며 내 손에 살아있는 온도를 느껴본다. 따뜻함이 손바닥에 닿고, 몸 안의 떨림이 또렷해진다. 얼음 위에 오래 서 있다가 처음으로 땅의 온기를 느끼는 순간처럼. 어디서 와서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 모를 내 안의 흔들림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형태를 얻은듯 했다. 이름 없는 불안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감각, 생명의 숨결로.
창밖의 하늘은 눈이 내릴 것처럼 낮게 내려와 내 눈높이를 맞춘다.
눈은 오지 않지만, 공기에는 이미 한줄기의 가능성이 스며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 공기 속에 머물고 있는 상태.
그 미세한 성장을 느끼며 컵 가장자리를 따라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나무는 자랄 때 흔들린단다. 바람이 지나가야 섬유가 단단해지지. 그렇게 예기치 못한 하루하루를 지나며 눈의 무게를 견딜 준비를 하는거야. 온실 안에서 곧게만 자란 나무는 첫 겨울에 쉽게 부러져. 흔들리는 연습은 부러지지 않기 위함일지도 몰라. 흔들림에 몸을 내어 맡기는 연습을 하다보면, 무거운 눈에도 부러지지 않는 유연한 가지를 갖게 되지.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카페를 나서자 어둠이 조금 더 내려와 있었다.
퇴근길 사람들의 걸음은 촉각을 다투고 있었고, 가방 속에서는 포장지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는 이미 선물을 준비한듯 했고,
누군가는 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듯 이곳 저곳을 기웃거린다.
고민과 결정, 그 사이에서 도시는 커다란 숨을 들썩이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어느덧 다시 트리 앞에 선다.
바람은 아까보다 조금 더 거세졌고, 가지들은 더 크게 흔들린다.
그 순간 전구 하나가 잠시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완벽하지 않은 빛.
그러나 바로 그 미세한 깜빡임 때문에 트리는 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흔들림이 빛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고 있었다.
"눈을 감아봐. 뭐가 보여?"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냐. 그 안을 잘 살펴봐. 뭐가 보여?"
방금 전까지 내 눈 앞에 살아있었던 트리가 어렴풋한 잔상을 남긴채 감은 눈 안에서 잠시 빛났다. 그 흐릿한 빛은 이윽고 허공으로 흩어져버렸다. 올라가는 잔상을 붙잡으려 애썼지만, 그 찰나의 시간이 결국 마지막이었다.
"이제 눈을 뜰 시간이야."
잔상을 잃은 슬픔이 드리울 새도 없이, 눈을 뜬 세상엔 찬란히 빛나는 트리가 있었다.
슬픔이 그리움으로 바뀌기 전, 눈을 떠 앞을 바라보니 더 빛나는 선물이 나를 기다린다.
집으로 향하는 길, 가로등 아래에서 내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가 다시 짧아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그림자는 흔들리고, 그 흔들림은 곧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없어지지 않은 채.
어둠 뒤 잔상이 나를 이끈다. 검은빛과 회색빛 사이, 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형태의 아름다움 속으로.
도시는 여전히 성탄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 불이 완전히 켜지지 않은 시간, 노래가 시작되기 전의 침묵.
모든 것이 도착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깨어 있는 시간이 된다.
나는 그 사이를 천천히 걷는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빛과 함께, 아직 대답하지 않은 마음을 안고.
대답보다 질문이 먼저 오는 자리, 말보다 바라봄이 앞서는 자리에서.
흔들림은 멈추지 않았고, 나도 그 안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부르기 전, 혹은 이미 불렸는지도 모를 그 경계에서
빛이 오기 전, 아직 기다릴 수 있는 희망 하나를 품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기다리는 우리는,
완성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서두르지도 않은 채 천천히 걷는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마음껏 흔들리며,
뿌리가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를
말보다 먼저, 몸이 기억하도록.
"나무는 자랄 때 흔들린단다. 바람이 지나가야 섬유가 단단해지지. 그렇게 예기치 못한 하루하루를 지나며 눈의 무게를 견딜 준비를 하는거야. 온실 안에서 곧게만 자란 나무는 첫 겨울에 쉽게 부러져. 흔들리는 연습은 부러지지 않기 위함일지도 몰라. 흔들림에 몸을 내어 맡기는 연습을 하다보면, 무거운 눈에도 부러지지 않는 유연한 가지를 갖게 되지. 그게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른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