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누군가의 계절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그가 어떤 계절을 지나든 여전히 그를 바라보는 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
계절을 건너오며 하나를 믿게 된다면,
사랑이란 '붙잡는' 일이 아니라,
조용히 '곁에 남는' 일이라는 것.
비가 오기 직전, 묘하게 가벼운 공기 속을 걷는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물방울들이 공중에서 숨을 고르고 있는 것처럼, 세상은 잠시 말을 아끼는 중이다.
그날 저녁, 나는 그런 침묵 속을 지난다.
우산 없이,
곧 젖게 될 걸 알면서도.
일부러 서두르지 않는 시간 속에서
발걸음은 천천히 바닥의 균열을 따라 흐른다.
비를 피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그날의 나에게 건네는 작은 고백이다.
오늘만큼은 도망치지 않겠다는,
젖어도 괜찮다는.
나는 오래전부터 사람들 곁에 살아왔다. 아니, 어쩌면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내 곁에 머물러주었다.
친구로, 동료로, 때로는 기대를 받아내는 역할로. 그러나 이상하게도 ‘곁에 있다’는 감각은 늘 멀다. 손에 잡히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필요해지는 순간마다, 나는 조금씩 나를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한다는 말 뒤에는 설명되지 않은 요구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듯했고, 사랑이라는 단어는 종종 책임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사랑 앞에서 조심스러워진다. 아끼면서도 함부로 다가가지 않는 사람. 마음을 내보이기보다, 거리를 지키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 그러나 안전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한 거리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더 깊은 고독으로 데려간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결국 혼자 남는 방식으로.
그럼에도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질문 하나가 나를 붙든다.
"정말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누군가의 곁에 있을 수는 없는 걸까."
"잘하고 있을 때뿐 아니라, 무너지고 있을 때도 같은 자리에 머무는 관계. 조건과 교환 위에 서지 않은 사랑. 그런 사랑은, 정말 가능한 걸까..."
이 질문을 품고 걷다 보면, 나는 늘 같은 공원에 닿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길은 아니었지만, 일부러 그쪽으로 발걸음을 튼다. 마치 그곳에만 질문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것처럼.
공원 한가운데에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누구에게도 특별히 불리지 않는, 이름 없는 나무.
그래서인지 나는 그 나무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오래 머무는 이유가 된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니?"
"저 나무요. 이름 없는 나무예요."
봄이면 잎이 터져 나오고, 여름에는 그늘을 넉넉히 드리운다. 가을에는 색이 바래며 천천히 자신을 놓아주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로 하늘을 버틴다.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나무는 한 번도 변명하지 않는다. 잘 자라지 못한 해에도, 초라해 보이는 날에도.
잎이 무성할 때는 마음이 놓이고, 모두 떨어진 날에는 쓸쓸함이 먼저 온다. 나는 나무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를 둘러싼 계절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계절에 나를 투영한 채로.
이번 겨울에도 그는 앙상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다.
뿌리를 깊이 내린 채,
모든 계절 속에 살아 있으면서.
잎이 있든 없든,
사람들의 시선을 끌든 그렇지 않든,
스스로를 설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계절을 붙잡지도, 밀어내지도 않으면서,
그저 서 있다.
그 태도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나무의 뿌리는 이 모진 세월을 견뎌내는 동안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되, 뿌리를 드러내지 않는 자세.
눈이 쌓이면 침묵 속에서 무게를 견디는 시간.
나무는 아무것도 가르치려 하지 않지만, 나는 그 앞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말 없는 존재가 전해주는, 가장 정확한 언어를.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니?"
"내가 바란 사랑을 보고 있어요."
삶을 바꾸려 하거나, 그의 계절을 대신 책임지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가 어떤 모습일 때든 바라봄을 거두지 않는 사랑.
잘 자라고 있을 때뿐 아니라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날에도,
같은 거리에 서 있는 마음.
지나가는 것들 사이에서 변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태도.
그렇게 바라보는 법을, 나는 조금씩 배워간다.
누군가의 인생에 들어간다는 건, 그 사람의 날씨를 관리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삶에는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더 많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일.
실패의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약속.
매번 다시 선택해야 하는 아주 작은 태도들이 쌓여 만들어낸, 보이지 않는 뿌리.
"완벽한 안전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확실한 미래나 영원한 약속을 구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누군가 딱 한 사람이 있다면 좋겠어요. 내가 무너질 때조차 나를 고쳐보려 들지 않는 사람,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사람, 계절이 아니라 나무를 봐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요. 잎이 무성할 때도, 잎이 붉게 물들어갈 때도,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한 어느 여름에도, 초라한 앙상함 속에서도요. '나는 네 편이야.' 그 한 마디를 남겨줄 수 있는 사람, '네가 그랬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야.'라며 믿어줄 수 있는 단 한 사람. 딱 한 명이면, 잔뜩 흐린 제 세상에 해가 가득 찰 것 같아요."
비는 결국 떨어진다.
나는 나무 아래에서 잠시 멈춘다.
빗방울이 잎과 가지를 두드리며 낮은 소리를 낸다.
나무는 나를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비를 막아주지도 않았다. 다만 나와 함께 젖고 있었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곁에 있음’이라는 감각을 또렷하게 만났다.
"이 나무처럼 살고 싶어요. 누군가의 인생을 구해주려 하기보다, 그의 하루 옆에 조용히 놓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설득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 떠나지 않겠다는 말대신 그저 남아 있는 침묵으로요."
어쩌면 사랑은 비를 없애주는 일이 아니라, 함께 비를 견뎌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계절을 바꾸는 힘이 아니라, 계절이 지나가도록 곁에 머무는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길을 걷는다.
나무를 뒤로한 채,
나무를 그의 자리에 두고.
"혼자라는 느낌은 들지 않아요. 아직 오지 않은, 혹은 이미 어딘가에서 같은 질문을 품고 있을 나무를 향해, 아주 조용한 희망이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거든요. 잎이 보이지 않아도, 꽃이 피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충분한 것을 알아보는 눈. 그 눈을 갖기 위한 걸음을 이제 막 내딛은 것 같아요. 언젠가, 그런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같은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겠지요? 누군가의 계절이 아니라, 그의 삶 옆에 놓인 한 사람으로요. 그 바람 하나만으로도, 오늘을 충분히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나무처럼 살고 싶어요. 누군가의 인생을 구해주고 싶다는 마음 대신, 그의 하루 옆에 조용히 놓일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설득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 떠나지 않겠다는 말보다는, 그저 남아 있는 침묵으로요."
우리 모두 자신의 인생에서 잘려나간 부분들을 압니다. 많은 부분이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갔고, 관계들은 어긋났고, 삶의 계획들이 무너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이 되지 못하는 실패란 없습니다. 잘려나간 부분도 새로운 삶의 터전이 될 수 있습니다. 뭔가 베어져 나가도, 뿌리가 튼튼하면 그 자리를 메웁니다. 뿌리가 튼튼하다면 새로 싹을 내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뿌리가 조금 잘렸다 해도 다시 싹을 틔울 수 있을 것입니다. 은총이 당신에게서 나와 주변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안셀름 그릔, <성탄의 빛>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