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조각으로 흩어진 나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그러라고 하라지

by 메리힐데

누군가는 나를 싫어한다.


이 문장을 받아 적고는, 말 뒤에 따라오는 마음을 오래 바라본다.


이유를 찾으려는 마음, 혹시 내가 놓친 것이 있었을까 되짚는 습관 같은 것들. 무엇을 잘못 말했는지, 어떤 표정이 남았는지, 조금만 더 부드러웠다면 달라졌을지. 생각은 늘 나에게로 접혀 돌아왔다. 설명할 수 있다면 오해도, 거리도, 감정도 조금은 줄어들 것이라 믿으면서.


좋은 사람은 미움받지 않는 사람이라는 학습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모두와 무난하게 지내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이토록 굳어진 마음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갈등을 만들지 않는 태도, 분위기를 흐리지 않는 말투, 적당히 웃고 고개를 끄덕이는 자세가 어른스러움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누군가의 싫어함은 쉽게 나의 결함이라고 믿는다. 고쳐야 할 부분, 반성해야 할 태도, 해명해야 할 사정처럼 마음 한쪽에 남아 오래 지워지지 않는다.


싫어함이 늘 잘못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사람은 조용함을 답답해하고, 어떤 사람은 분명한 선을 차갑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고집이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 질문받는 일을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같은 모습이 다른 언어로 해석되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그것은 종종 내가 틀려서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의 세계와 겹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다.


모든 결이 서로를 받아 안을 수는 없고, 모든 말이 같은 속도로 닿지도 않는다.

그 단순한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오래도록, 그 겹치지 않음을 나의 부족함으로 오해해 왔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설명하려 애썼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나를 조금씩 덜어냈다. 말을 고르고, 생각을 낮추고, 경계를 흐렸다. 그러면 조금은 부드러워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관계는 유지되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점점 희미해졌다. 누군가에게는 다정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 성실하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나를 흩어가며 유지하는 이 평온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그리고 그 평온의 대가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그 무렵, '오해'라는 말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


당사자에게 묻지 않은 채 혼자서 완성된 오해는, 그 누구도 대신 풀어줄 수 없다. 질문이 없었던 자리에 대화가 자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내려진 결론은 말이 닿기 전에 닫혀 있고, 그 안에서는 설명조차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애써 건넨 말이 공중에서 힘을 잃는 순간을, 나는 몇 번이나 경험했다.


누군가 나에게 묻지 않은 채 자기만의 해석으로 나를 정해버렸다면, 그 순간부터 그것은 내가 애써 손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 말이 부족해서도, 태도가 모자라서도 아니라 애초에 나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선택에 가깝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요구했다.


그 지점에서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모든 오해를 풀 책임이 나에게 있지는 않다는 것.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오해와, 처음부터 내 손을 벗어난 오해가 있다는 것을.

설명은 언제나 관계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하지만, 질문이 없는 설명은 스스로를 소모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마음 한편에서 아주 작은 문장이 올라왔다.

"그러라고 하라지."


날카롭지도, 단호하지도 않은 말이었다.

다만 더 이상 나를 증명하지 않겠다는, 조용하고 느린 결심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 문장은 나를 지키는 경계처럼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나를 오해할 것이고, 누군가는 끝내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내가 믿는 속도로 걷고, 내가 지킬 수 있는 선 안에서 살아간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삶 대신, 거칠지만 스스로에게 정직한 삶을 택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조각으로 흩어진 나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


"누군가의 싫어함 앞에 더 이상 너 자신을 해부하지 마. 설명하지 않아도 돼, 애써 가까워지려 할 필요도 없어. 대신 마음속으로 한 번만 더 말해봐. '그래, 그러라고 하라지.'라고. 그 말 뒤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거야. 다시 네 속도로 돌아오기 위해서."





관계에는 늘 상처가 있다. 아무리 좋은 관계라 해도 스치지 않고 지나가지는 못한다. 말의 끝에서, 침묵의 사이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순간에 상처는 남는다. 우리는 대개 그 상처가 없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관계란 애초에 상처의 가능성을 품고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해가 지고 도시의 불이 하나둘 켜질 때, 창문마다 다른 온도의 빛이 머문다. 어떤 방에서는 여전히 이야기가 이어지고, 어떤 방에서는 말이 멈춘 자리에 고요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 고요 속에서 각자의 상처는 다른 모습으로 숨을 고른다. 상처는 종종 그렇게,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깊어진다.


아프더라도 회복을 원한다면, 먼저 소독할 용기가 필요하다. 잠시 더 쓰리고,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버겁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조심스레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두면 시간은 제 나름의 속도로 회복을 돕는다.


나는 그 소독을 '대화'라고 부른다.

말이 오가며 생기는 아픔이 아니라,

말이 닿지 않아 남는 상처를 돌보는 일로서의 대화.


물론 모든 상처가 끝까지 아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처는 덮지 않는 것이 나를 지키는 방식일 수도 있다. 모든 관계를 끝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고, 모든 상처를 회복해야 할 의무도 없다. 그 판단은 언제나, 결국 나의 몫이다.






겨울의 서늘한 밤공기가 조금 더 식어갈 무렵, 숨을 내쉴 때마다 희미한 김이 생겼다 사라졌다. 그 사이로 말하지 못한 문장들이 조용히 흩어진다. 얼어붙은 보도블록 위를 조심스레 딛고 걷다 보면, 하루 종일 쥐고 있던 마음도 조금씩 풀린다. 설명하려 애쓰던 시간들, 오해를 바로잡겠다고 마음속에서 수없이 연습했던 말들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다. 가로등 아래를 지날 때마다 그림자가 길어졌다가 짧아지고, 그 반복 속에서 오늘의 마음도 정리되는 듯하다. 모든 관계를 끝까지 붙잡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모든 오해를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이제는 부담이 아니라 숨 쉴 틈처럼 느껴진다. 걸음을 늦추면, 나를 소모시키던 생각들도 자연스럽게 뒤로 처진다.


누군가는 끝내 나를 오해한 채로 남을 것이다. 누군가는 여전히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는 끝내 묻지 않을 것이다. 어떤 마음은 스쳐 지나가고, 어떤 오해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변론의 기회도 없이 유죄판결이 내려질지도 모른다. 재판정 안의 공기는 차갑고, 모두의 눈이 갑자기 나에 대한 경멸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예전 같았으면 그 자리에 머무르며 있는 힘껏 주어지지도 않은 변론시간을 갖기 위해 소리 지르다 억울한 퇴장을 당했겠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 또한 삶의 일부라는 것을.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어안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나다.

이해받지 못한 채 남겨진 자리도, 설명되지 않은 침묵도

더 이상 나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계절이 결국 스스로 바뀌듯,

어떤 마음은 내 손을 떠나야 할 때가 있다.


그래도 괜찮다.
겨울이 길어도, 끝이 있으므로.


꼭 쥔 손을 놓아야

공기가 결을 일으켜

봄을 몰고 올 것이므로.

"그러라고 하라지."



어쩌면 관계란 애초에 상처의 가능성을 품고 시작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끌어안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나다. 이해받지 못한 채 남겨진 자리도, 설명되지 않은 침묵도, 더 이상 나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싫어함 앞에 더 이상 너 자신을 해부하지 마. 설명하지 않아도 돼, 애써 가까워지려 할 필요도 없어. 대신 마음속으로 한 번만 더 말해봐. '그래, 그러라고 하라지.'라고. 그 말 뒤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거야. 다시 네 속도로 돌아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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