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올 것을 아니까요.
이미 이루어졌으나,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기다리는 오늘.
오늘은 크리스마스가 아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날, 크리스마스이브다.
우리는 보통 이 밤을 설렘으로 기억한다.
불이 켜지고, 약속이 있고, 무엇인가 곧 도착할 것 같은 예감으로.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밤은 기쁨보다 '기다림'에 더 가까운 시간이다.
'이미 이루어졌다'라고 말하는 어떤 것이 있다.
그러나 아직 내 눈앞에는 없는.
손에 잡히지 않고, 증명할 수도 없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서 이미 시작되었음을 믿어보는 마음.
그 마음을 우리는 '희망'이라고 부른다.
희망은 낙관과 다르다. 곧 좋아질 거라는 예측도 아니다.
오히려 희망은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래도 문을 닫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오늘 밤은 그런 밤이다.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이미 곁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밤.
공원 한쪽 트리에서 조금 떨어진 벤치에는, 홀로 앉은 아이가 있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있지만 어깨는 잔뜩 움츠러들었고, 발끝은 바닥을 향해 가지런히 모은 채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에 쥔 장갑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트리 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아이의 시간은 그곳과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올해 착한 일을 많이 하지도 않았어요.”
아이는 중얼거렸다.
누군가에게 말한다기보다, 자기 마음속을 그대로 밖으로 흘려보내듯.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화도 많이 냈고, 친구한테 나쁘게 말한 적도 있어요. 거짓말도 했고요.”
말을 할수록 아이의 고개는 더 숙여졌다.
마치 자신의 잘못이 무게가 되어 목덜미를 짓누르는 듯했다.
“그래서…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실 것 같아요.”
그 말 뒤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아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한 채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벤치 옆으로 조심스레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포근한 담요를 두른 아주머니 한 분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듯 몸을 숙여, 곁에 앉았다.
“왜 이렇게 표정이 안 좋니?”
아이의 어깨가 살짝 움찔했지만, 여전히 고개는 바닥을 향했다.
대신 조금 전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자기가 생각하는 ‘올해의 잘못들’을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아이의 말을 끊지 않고 오랫동안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그랬구나”라고 말해주면서.
이야기가 끝났을 무렵에도 아이는 여전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마치 이미 산타를 만나지 못할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아이의 위로 겨울의 그늘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이윽고 아주머니는 몸을 일으켜, 잔뜩 고개를 숙인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씨앗을 땅에 심고 나면 말이야, 농부가 잠에 들든 지켜보든 상관없이 뿌리를 내려 스스로 잘 자란단다. 농부는 씨앗에 깃든 힘을 믿지. 그리고 자기 땅의 비옥함도. 그 작은 씨가 땅속에서 자라는 것처럼,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생명도 사랑 안에서 자라난단다. 다만 언제, 어떻게 열매를 맺을지는 모를 뿐이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란다.”
아이의 손이 멈췄다.
장갑을 만지작거리던 손이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렀다.
아주머니는 말을 이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네가 몇 번 넘어졌는지를 세지 않으셔. 대신 네 안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를 보신단다. 네 씨앗에 깃든 힘과 땅의 비옥함. 울면서도 다시 일어나려고 했던 순간들, 미안해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던 그 다짐들. 그들 모두가 네 안에 이미 자라고 있는 사랑이란다.”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직 아주머니를 똑바로 보지는 못했지만, 시선은 조금씩 위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후, 아이는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눈은 여전히 촉촉했지만, 입꼬리는 아주 조금 올라가 있었다.
아직 오지 않은 성탄절,
아이는 선물을 기다리기보다,
자기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이미 산타를 만난 사람처럼.
올해를 돌아보면 우리 역시 많은 것을 알아보지 못한 채 지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내 곁에 있었던 위로를, 이미 시작되고 있던 변화를, 이미 나를 살리고 있던 어떤 손길을 그저 평범한 하루라고 이름 붙이며 흘려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탄을 앞두고 싹을 틔우기 시작한 나의 희망은,
그 모든 ‘놓쳐버린 순간들’ 위에서 자라고 있었다고 고백해 본다.
2025년의 희망은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 이미 시작되고 있었구나”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힘이다.
그래서 희망은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다시 믿어보는 용기가 아닐까.
우리는 자주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충분히 잘 살고 있는지,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그러나 어쩌면 이 밤이 우리에게 건네는 질문은 조금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내 안에서는 무엇이 자라고 있는가?
나는 그것을 끝까지 지켜볼 용기가 있는가?"
이미 이루어졌으나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앞을 정확히 아는 일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함부로 실패라 부르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넘어졌던 순간들마저 성장의 일부로 남겨두는 선택.
오늘 밤, 우리는 기다린다.
확신해서가 아니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아직 오지 않으신 분을 기다리며, 알아보지 못했을지라도 곁에 있었음을 믿어보는 밤이다.
멈춰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을 함부로 재촉하지 않으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이 땅 위에 그대로 남겨두는 용기를 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 밤이,
사실은 이미 이루어졌으나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의 한가운데일지도 모른다는 그 믿음 하나로,
우리는 오늘도 조용히 문을 열어둔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오늘,
선물을 기다리기보다 우리 안에 조용히 자라는 것을 믿으며,
'아직'이기에, 더욱 설레는 하루.
분명히 올 것을 알기에, 기쁜 기다림.
그 희망 속에서,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씨앗을 땅에 심고 나면 말이야, 농부가 잠에 들든 지켜보든 상관없이 뿌리를 내려 스스로 잘 자란단다. 농부는 씨앗에 깃든 힘을 믿지. 그리고 자기 땅의 비옥함도. 그 작은 씨가 땅속에서 자라는 것처럼, 우리 안에 살아 있는 생명도 사랑 안에서 자라난단다. 다만 언제, 어떻게 열매를 맺을지는 모를 뿐이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듯,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건 아니란다.”
“산타 할아버지는 네가 몇 번 넘어졌는지를 세지 않으셔. 대신 네 안에서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를 보신단다. 네 씨앗에 깃든 힘과 땅의 비옥함. 울면서도 다시 일어나려고 했던 순간들, 미안해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던 그 다짐들. 그들 모두가 네 안에 이미 자라고 있는 사랑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