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외딴 법을 의심한다

그러나 함께하는 법을 믿는다

by 메리힐데

우리는 가끔 이런 질문 앞에서 멈춘다.


왜 늘 누군가 다치거나, 누군가 죽은 뒤에야
세상은 아주 조금씩 움직이는 걸까.
왜 평온한 일상 속에서 시민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 걸까.



사실 우리는 모든 위험을 미리 알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구조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살아갈 수도 없다. 제도는 너무 크고, 책임은 멀게 느껴진다.


흩어진 원인과 통계로만 존재하는 위험 속에서, 아직 숫자가 되지 못한 고통은 사회가 말할 수 없는 언어로 남는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고, 그 사이 누군가는 세상으로부터 조용히 멀어진다.


뉴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는 공론장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받는 창이 아니다. 그곳은 이 사회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다시 바라봐야 하는지를 배우는 자리다.


누가 아프고,
무엇이 반복되고 있는지,
어떤 고통이 계속 외면되고 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는 통로이기도 하다.


공론장은 우연처럼 보였던 일을 구조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개인의 불운으로 소비될 뻔한 이야기를 사회적 질문으로 남긴다. 그 순간, 한 사람의 경험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사고는 통계가 되고,
통계는 구조가 되며,
그 구조는 결국, 우리 모두가 마주해야 할 얼굴이 된다.




그럼에도 사회에 남아 역사가 되어야 할 시민의 목소리는, 혼자일 때 쉽게 흩어진다. 그러나 공론장이라는 연결을 만나는 순간, 그 성질은 달라진다고 믿는다.


더 크게 외쳐서가 아니라,
더 정확하게 전달된 덕분에,

비로소 변화는 시작된다.


진실된 공론장은 분노를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책임이 머물 자리를 만든다.



그럼에도 나는 법을 쉽게 믿지 못한다. 법이 늘 제때 도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그래서 법을 떠나려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므로, 법에게 묻는다.


왜 이 사람은 혼자였는지,
왜 이 고통은 너무 늦게 불렸는지.






법은 생각보다 연약하다. 종이 위의 문장만으로는 사람을 안아 줄 수 없다. 조문은 모든 삶을 담지 못하고, 판결은 언제나 일부만을 말한다. 법은 완성된 정의라기보다 정의를 향해 가는 불완전한 시도에 가깝다. 불완전하고, 흔들리고, 비판받아야 할 지점이 많기에, 나는 오히려 그런 법을 조금씩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법이 문제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진짜 문제는 법을 완전한 답처럼 여기는 태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람과 분리된 법, 현장에서 떨어져 나온 법, 얼굴 없는 법은 쉽게 누군가를 밀어낸다. 나는 그런 법을 의심한다. 사람 없이 홀로 서 있는 법을 의심한다.


그러나 사람을 품고, 사람에게서 시작되어, 다시 사람을 향할 때의 법은 다르다.


함께하는 법은 누군가의 외로운 기다림을 혼자 감당하게 두지 않는다. 그늘이 되어 주고, 잠시 기댈 언덕이 되어 주며,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가 된다.




옳음과 친절함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친절함을 선택하고 싶다.

이념과 사람 사이에서라면,

사람을 선택하고 싶다.


물론 법은 옳아야 한다. 그래야 기준이 되고, 신뢰를 얻는다. 그러나 법이 사람을 향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옳더라도 그저 외딴 규칙에 머물 뿐이다.


옳은 법 위에 사람을 향한 친절함이 더해질 때, 법은 비로소 삶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시민은 분노만으로 오래갈 수 없고, 연민만으로 구조를 바꾸지도 못한다. 우리는 묻고, 연결하고, 기억하면서 아주 느리게 앞으로 나아간다.


공론장은 그 과정에서 사실을 책임의 언어로 바꾸는 자리여야 한다. 그럴 때 법은 더 이상 위에서 내려다보는 규칙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 놓인 약속이 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외딴 법을 의심한다. 사람을 보지 못한 채 스스로 옳다고 말하는 법을 의심한다.


그러나 시민의 질문 속에서,
서로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자리에서,
다시 사람을 향해 쓰이는 법을 믿는다.




법은 위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다.


사람에게서 시작되어
끝내 사람을 살리는 쪽으로 돌아오는 것.


나는 그 가능성을,

끝까지 믿어보고 싶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