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I see you

나는 당신을 봅니다

by 메리힐데
너여서 좋아.


“너는 내가 왜 좋아?”

“음.. 그냥 너여서 좋아.”


어딘가 아쉬운 답변이었다. 더 이상 묻자니 내가 스스로 초라해질 것 같고 기뻐하자니 너무 성의 없는 답변 같았다. 이러한 질문의 목적은 명확했다. 지인들이 ‘내가 누구인지’, ‘나를 어떻게 보면 사랑할 수 있는지’ 알려주기를 원했다. 이런 질문에 때때로 ‘그냥 너라서’라고 간단하게 대답하는 이들이 있었던 반면, 나의 장점을 나열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참 멋져서”라는 대답을 들으면 무서웠다.

“예쁘잖아”라는 대답도 무서웠고

“항상 발전하려는 모습이 본받을만해서”라는 대답도 무서웠다.


내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순간 나를 떠나겠구나
못생겨지는 순간 나를 떠나겠구나
내가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나를 떠나겠구나


내가 아닌 내가 입은 옷, 나의 액세서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그냥 너라서 좋아”라는 대답을 들으면 또 그것대로 석연치 않았다.

도저히 나라는 사람이 왜, 뭐가 좋다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에게도 “너라서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있다.

그 사람이 신경질을 낼 때에도, 예민하게 굴 때에도, 잔소리를 할 때에도

“지금 컨디션이 안 좋은가 보다. 나라도 신경 쓰이지 않게 행동해야지.”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


씻지 않은 모습으로 꾀죄죄하게 나와도 그냥 안 씻은 사람으로 보이고, 멋진 정장을 입어도 내 눈에는 정장 입은 사람으로 보인다. 내 앞에서 방귀를 뀔 때면 사람이 방귀를 뀌었을 뿐이다.


이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처음으로 ‘아, 이게 사랑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여전히 ‘사랑’이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었지만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확신했다.

“이 사람이면 사랑하며 살 수 있겠다”가 아니라

“나의 사랑은 이 사람이다”였다.


내 마음속 ‘사랑의 공간’은 그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 사람 덕분에 만들어졌고, 그 사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사람에게만큼은 ‘그냥 당신이어서 좋아요’, ‘있는 그대로 당신이어서 좋아요.’라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정의가 있다.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사랑이라고 이야기하고 ‘존중’을 사랑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이들 중 무엇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 모든 설명은 결국 사랑이 가진 여러 속성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도 사랑이고, ‘존중’도 사랑인 것이다.


어쩌면 ‘너라서 좋아’라는 말도 사랑의 속성 중 하나가 아닐까?





이제 더 이상은 “나를 왜 좋아해요?”라는 물음을 던질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찾으려 애쓸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나는 나를 만났기 때문이다. 몇 가지 속성으로 나를 정의할 수는 없지만 내가 느끼는 ‘나’는 있다. 그것은 생명의 에너지인데 조금 더 직관적으로 표현해보자면 ‘내 안의 빛’이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I see you
나는 당신을 봅니다

영화 아바타에서 나비족들의 인사말이다. 그들은 사랑 고백을 할 때 “I see you”라고 말한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다. 당연히 눈이 있으면 보이는 건데.. 당신을 본다고?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 사람의 에너지, 즉 내면의 빛을 보았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당신을 봅니다”라는 말은 ‘기적’이다. 시각으로 볼 수 없는 어떠한 것, ‘당신이라는 빛’, 진정한 ‘그 사람’을 본 것이기 때문이다. 눈이 아닌 마음에 그를 담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 당신이어서 좋아요. 사랑합니다. 이 세 가지 말은 결국 같은 말인 것 같다.


‘나는 당신을 봅니다’
=
‘당신이어서 좋아요’
=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