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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쥴리 Oct 20. 2023

쫓기듯 살아왔던 20대의 결과

사회와 단절된 채 도서관-집-도서관-집 또는 학원-집-학원-집만 반복하며 지낸 2년.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나서 바보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2년 동안 얇고 넓게 공부하다 보니 남은 지식이랄 것도 없고, 내 뇌가 순백의 상태가 되어버린 기분. 공무원 공부 시작했을 때 도움이 될까 싶어 취득한 한국사 1급 자격증 말고는 토익과 오픽 점수 모두 진작에 만료됐다. 이 상태로는 당장 지원할 수 있는 회사도 없었고, 어느 회사도 나를 원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경력 있는 신입을 추구하는 판에 불합격한 사람의 과정까지 살펴봐줄 여유는 없는 게 당연했다.

결국 2년의 공백기를 메꾸기 위해선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옥죄기 시작했다. 점점 마음이 조급해졌다. 벌써 28살이 되었고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얼른 취업 준비를 해야 했다. 2주 간격으로 토익과 오픽 시험을 접수하고 온라인 강의까지 결제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펜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미칠 지경이었다. 멍하니 도서관을 오가며 결국 아까운 수강비만 날렸다. 제대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이 무기력하게 지내는 시간만 늘어갔다. 내가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었나. 내가 나를 이 정도로 컨트롤도 못하는 사람인가. 시간이 흐를수록 나 자신이 가치 없게 느껴졌고 사회에서 밥벌이를 하며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점점 늘어만 갔다. 날짜에 이끌려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보내던 어느 날, 갈피를 못 잡고 힘들어하는 내게 동생이 한마디를 건넸다.


너무 조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사소한 것부터 차근차근 성취하는 기쁨을 느껴봐.


현실에만 급급했던 나를 잡아 세워준 건 동생이었다. 사실 나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 내 뇌에서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뭐라도 해야 한다'라고 끊임없이 움직임을 강요하고 있었다. 온전히 쉬지도, 시작도 못 하는 어중간한 상태로 지내고 있는 나는 처음으로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스스로에게 휴식을 줄 여유조차 없다고 말했던 내게 “사소한 것부터 성취해 보라"는 말은 생각보다 굉장히 큰 힘이 되었다. 꼭 큰 결단을 내려서 무언가를 시작하거나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모든 게 부담스러운 내게 가장 와닿는 단어였다.


"사소한 것.."


나는 한참을 되뇌었다. 사소한 것이라도 성취의 기쁨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려면 일단 나를 알아야 했다.


돌이켜보면 한 번도 나 자신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다음 스텝을 향해 앞만 보며 달려왔다. 고등학생 때는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게 전부였고, 대학생 때는 학점 관리를 하며 스펙을 쌓아 '좋은 회사'에 취업하는 게 전부였다. 취업했으면 '좋은 사람'과 결혼을 준비한다는 게 당연했다.

이 루트는 내가 따라야 할 정해진 순서였다.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내 주변을 포함한 모두가 그렇게 가고 있으니까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남들이 지나간 길을 답습하듯이 살아왔고, 항상 남들과 비슷해지려고 노력했다. '남들이 하는 만큼은 해야 돼, 남들은 다 이 정도 하니까' 라며 나를 닦달해왔다. 근데 갑자기 길을 잃어버렸다. 이 나이쯤엔 분명 결혼하고 달달한 신혼을 즐기고 있는 행복한 시나리오였는데..?

26살에 공무원 준비를 시작하며 경로를 이탈해버렸기에 더욱 막막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그랬던 나는 "조금 늦어도 괜찮아"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해본 적도 없었다. 경쟁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

남들의 성취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좋아서 성취한 게 얼마나 될까?

전공에 맞추고, 회사에 맞추고.. 어딘가에 나를 끼워 맞추려고만 하며 살아왔다. 그렇게 얻은 성취는 사실 온전히 내 것이라기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는 걸.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뭐를 하면 행복하고, 어떤 사소함에 성취를 느낄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언가의 흐름에 생각이 길들여진 채, 20대까지 살아왔던 지난 순간들. 부끄럽게도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달려오던 나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그동안 '여유'라는 것을 주지 못한 나에게 생각 정리할 시간을 주기로 했다. 경로를 이탈해버리고 리셋된 나를 다시 처음부터 알아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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