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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이혜림 Aug 07. 2022

Day46.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순례길의 마지막 날. 내게는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멀고 멀었던 마지막 날이 드디어 왔다. 오늘만큼은 다른 순례자와 마주치지 않고 오롯이 우리 둘만의 길을 걷고 싶어서 일부러 숙소에서 기다렸다가 아주 천천히 나왔다. 오전 9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남은 거리는 20km.



"여보, 사진 찍자. 이게 우리 순례길의 마지막 사진이야."



매일 출발하기 전 우리 둘만의 의식처럼 찍던 셀카도 오늘로서 마지막이구나. 마지막이라는 말이 내 마음에 이리 콕 박히게 될 줄은 몰랐다. 아쉽다. 아쉽지만 홀가분하고, 홀가분하지만 슬프기도 한 아리송한 감정이었다. 며칠 전부터 지속된 좋으면서도 싫은 양가 감정. 마지막 사진 속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은 무척 씩씩했고 무엇보다 멀끔했다. 대성당에 가는 날이라고 경건한 마음으로 순례길에 오른 뒤 처음으로 나는 화장을 했고, 남편은 깔끔하게 수염을 밀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들은 늘 아름답기 마련이다. 오늘의 길은 어느 길보다 아름다웠다. 아른 새벽부터 비가 계속 잔잔하게 내렸는데, 이슬을 흠뻑 머금은 숲의 촉촉한 공기가 참 좋았다. 이 순간을 잊고 싶지 않아서 나는 더 깊숙하게, 더 천천히, 아주 길고 긴 호흡을 내쉬며 걸었다. 그러나 마지막이라고 해서 갑자기 어려운 게 수월해지는 건 아닌가보다. '여기가 어디야, 도대체 얼마나 더 걸어야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오전에만 해도 수십 번을 하며 걸었다.


늘 그렇듯 도저히 너무 힘들어 못 걸을 것만 같은 순간이 오면 신기하게도 선물처럼 저 멀리 순례길의 천국인 카페가 보이기 시작한다. 기쁨의 탄성으 지르며 카페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나는 커피, 남편은 맥주. 각자 좋아하는 음료 한 잔씩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서 평소라면 시시콜콜하게 수다를 떨어야 하는 순간. 우리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이 시간도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자, 여기 폴대 잡아. 내가 끌어줄게."



오르막길 앞에 서서 남편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며 그의 폴대를 내밀었다. 유난히 오르막길 앞에서 힘들어하던 나를 위한 마지막 특급 서비스인 셈이다. 남편이 내민 폴대를 잡고 오르막길을 수월하게 올랐다. 마지막이 다 되어서야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나를 끌어주고 밀어주던 남편이 보이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이 사람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다. 내가 남편을 위해서 걸었던 게 아니라 실은 남편 덕분에 내가 이만큼 왔다.



"올라. 부엔 까미노!"



맞은 편에서 해맑은 인사와 함께 순례자가 다가왔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향해 걸을 때, 반대 방향으로 걷는 순례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일 것이었다. 혹, 도움이 될까 싶어 물었다.



"혹시 물건을 잃어버렸어?"

"그건 아니고, 성당에서부터 생장을 향해 걷고 있어."



아, 그렇지. 이렇게 걸어도 되는구나.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렀다. 오늘이 순례길 마지막 날인 나는, 오늘이 순례길의 첫날인 그에게 묻고 싶은 말도, 해주고 싶은 말도 너무너무 많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한들 그에게는 그만의 순례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무조건 생장에서 산티아고 방향으로 걸어야만 순례길인 것은 아니다. 반대로 걸어도 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당연한 이 사실을 마지막 날이 돼서야 알게 됐다.


우리네 인생도 그럴 것이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걷는다 하더라도 그것만이 인생의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어쩌면 조금 더 마음 가는 대로, 내키는 대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미국에서 왔다는 반대로 걷던 순례자와의 짧은 대화는 내게 오랫동안 깊은 여운을 남겨주었다.


이윽고 도시에 들어서서 산티아고 대성당이라는 노란 표지판을 본 순간,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대성당을 향해 800km를 하루 단위로 쪼개고 나누어 46일간 걸어온 길이다. 이제 마지막 지점인 성당을 마주할 시간. 어떤 감정으로 바라봐야 할까, 도착하면 어떤 기분일까, 무슨 생각이 들까. 마침내 다 왔다고 행복해할까, 너무 아쉬워서 눈물이 날까? 가까워질수록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정리하지 못한 채 멈추지 않고 걸었다. 돌기둥을 돌아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고,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리면서 북적하고 소란스러운 대광장이 눈 앞에 펼쳐졌다. 대광장 앞에는 아주 웅장한 산티아고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 도착했다!"



나는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참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던 감정이었다. 초반에 정말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힘들다는 이유로 도망치듯 그만두고 싶진 않아서 멈추지 않았던 나날들, 저녁마다 혼자 밖에 나와 작은 불빛 아래서 일기 쓰며 숨죽여 울었던 순간들. 그런 모든 시간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막상 성당에 도착하면 무덤덤할 것 같지 않냐며 남편과 농담하던 게 민망할 정도로 나의 눈물을 멈출 줄 모르고 흘렀다. 남편 곁에서 멀리 떨어져 혼자 성당을 바라보며 폭포처럼 쏟아지는 감정을 애써 삼켰다. 사진을 찍어 달라고 다가오던 사람들도 이내 내 표정을 살피고는 조용히 지나쳐갔다. 한동안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졌다.


이 길은 자꾸만 나를 울컥하게 한다는 말에 누군가 "왜 울어요?" 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글쎄. 왜 우는 걸까. 나는 그 질문에 어울리는 적절한 답을 여전히 찾지 못했다. 슬픈 것도 아니고, 기쁜 것도 아니었다. 그냥 눈물이 터지고, 나는 눈물이 멈출 때까지 낮게 엎드리는 수밖에 없었다.


길 위에서도 참 많이 울었고, 철의 십자가를 눈앞에 두고 올라가보지도 못하고 울며 돌아섰고, 마지막까지도 성당 앞에서 울고 있다. 어느 날은 정말 마음 놓고 펑펑 울고 싶어서 중간에 피정의 집에 들어갈까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아마 내게 쌓여있던 마음의 짐이 참 많았던 것 같다.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살았다. 그게 이곳에서 나를 울게 했다.


묵혀둔 고민, 감추고 살았던 아픈 기억, 바빠서 까맣게 잊고 있던 혹은 잊은 척 살고 싶었던 것들. 길을 걷는 길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곳에서 그 모든 것들이 차례차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길을 걸으며 고통의 시간을 견디고 나면 그날 밤 일기를 적으면서 하나 둘 정리해나갔다. 치유의 시간이었다.


어느 날은 부모님께 죄송하고, 어느 날은 내 몸에게 미안했다. 어느 날은 내 남편을, 친구들을 떠올리고 어느 날은 지난 날 내게 상처를 준 이들과 내게 상처를 받았을 이들을 떠올리며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를 했다. 고통은 나를 성장하게 하고 한단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렇게 한 단계 넘고 나니 비로소 나의 길이 보이고, 나만의 까미노를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진짜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일기장에 쓰는 글들은 절반 이상 줄고 대신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시답잖은 이야기들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눴고, 영양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영감으로 충만한 생각들을 나누는 시간을 매일같이 가졌다. 사람들과 함께 켜켜이 쌓아온 시간은 나의 몸과 마음을 모두 무장해제시켰다.


몸의 길, 마음의 길, 영혼의 길로 이루어져있다는 이 산티아고 순레길을 그렇게 46일간 몸과 마음으로 깊숙이 느끼며 걸어왔다. 정확하게는 779Km의 길을 남들보다 느리지만 뚜벅뚜벅 뚝심 있게 남편과 손 잡고 결국은 다 걸었다. 매일 하룻밤씩 머물렀던 알베르게의 스탬프가 빼곡하게 찍힌 순례자 여권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나의 일기장, 그리고 여전히 진한 흉터로 남아있는 베드버그 물린 자국들은 그 증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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