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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이혜림 Aug 10. 2022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그 후의 이야기


내가 처음으로 남편에게 세계여행을 떠나자고 말을 꺼냈을 , 남편은 여행의 시작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자고 말했다. 나는 싫다고 했다.   킬로미터를 도대체  걷는건지 이해할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인생은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나는 결국  길을 걷게 되었고, 수없이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며 무너지고 좌절했다. 아직도 내가 800km  걸었다는  믿겨지지 않는다. 그만큼 내가 아는 나는  나약한 사람이었다. 매일 작은 것에도 흔들리는 아주 작고 약한 사람.



그렇지만 나는 해냈다. 해내지 못할 줄 알았는데 해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배운 건 때로는 힘들어도 도망치지 말고 직면해야 한다는 것, 똑바로 마주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비록 어려울지라도 일단 겪고 나면 더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순례길 완주 후 산티아고에서 2박의 짧은 휴식을 끝으로 우리 부부는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떠났다. 그리고 다시 여행자로 돌아가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유럽, 동남아, 하와이, 뉴질랜드, 미국 등을 돌면서 세계여행을 했다. 예기치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예상보다 빨리 귀국했지만, 순례길 위에서 계획했던 것처럼 세계여행의 마지막은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 것으로 마무지 지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세계여행 다니면서 어디가 가장 좋았냐는 사람들의 숱한 질문에 비로소 뜸 들이지 않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제일 좋았던 곳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챙겨간 노트 한 권을 내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46일간 다 쓰고 버린 펜은 3개. 이 길을 영원히 잊고 싶지 않아서 코로나 바이러스로 방구석에 앉아 있던 뜨거운 여름날, 순례길에서 눈물 콧물 질질 짜며 기록했던 일기장을 펼쳐 하나의 원고로 다듬어나가기 시작했다. 모두 다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일기를 읽을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때의 나는 매 순간을 온 힘을 다해 당당하게 마주하며 살았다. 오로지 나 자신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 이야기를, 나의 경험을 이제는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나는 못해, 나는 그런 거 싫어해. 나는 이런 사람이란 말이야'라고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과거의 나와 같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어쩌면 그 틀을 네가 스스로 깨고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너에게 한계란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나의 글로 조금이나마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던 원고 작업이었다.


순례길은 여전히 내 삶에서 아주 큰 지분을 차지한다. 이따금 내 일상의 중심을 뒤흔드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익숙한 습관대로 서둘러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순례길 위에 우뚝 서 있는 내 모습을 떠올린다. 다시는 도망치지 않겠다 말하던 과거의 내게 부끄러워져서 두 주먹 불끈 쥐고 오늘도 힘을 내어 살아간다.


돌이켜보니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길 위에서 나와 함께 걸어준 사람들과 사랑하는 남편 덕분에 매일 더 강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 힘으로 끝까지 걸을 수 있었고, 혼자가 아니었기에 결국은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나의 영원한 순례길 친구들과 그곳까지 나를 이끌어준 사랑하는 나의 남편, 정민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른 새벽을 다채로운 빛으로 물들이던 경이로운 하늘도, 우연히 마주친 반가운 순례자와 어울려 놀던 시간도, 카페에서 마시던 커피 한 모금의 여유도 모두 그립지만 지금 가장 그리운 것은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길 위를 구슬땀 흘리며 뚜벅뚜벅 걸어가던 나다.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고생하는 여행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다시 안전한 여행이 가느해지면 어떤 길을 걸어볼까 고민하는 나를 자주 본다. 기회가 된다면 두 번째 순례길을 걸어보는 것도 참 좋겠다. 매우 진부한 문장으로 이 글을 마치겠다. 나의 첫 번째 순례길은,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행복했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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