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에 눈을 떴다. 오랫동안 물건을 적게 지니고, 적게 쓰며 살다 보니 과잉소비로 인한 환경 문제에도 자연스럽게 마음이 갔다. 가급적 쓰레기를 만들지 말자는 제로웨이스트는 내가 지향하는 지점과 맞닿아 있었다.
처음에는 플라스틱 쓰레기 줄이기에 혈안이 되었다.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 포장을 환영했고, 천주머니 구입을 찬양했다. 물건을 살 때면 포장은 물론 성분까지 집착했다. 옷에도 상당수의 플라스틱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는 플라스틱 성분이 없는 옷을 찾아 헤맸다.
문제는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딜레마를 겪었다는 것이었다. 옷만 예를 들어도 플라스틱이 들어가지 않은 옷을 구입하려면 천연 소재인 면이나 모를 구입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문제는 있었다. 면은 대량으로 목화를 재배하는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환경오염을 만들고, 모는 공장식 사육으로 인한 동물들의 학대를 낳고 있었다. 벗고 살지 않는 한 입을 수 있는 옷이 없었다.
커피도 그렇다. 밖에서 사 먹으며 종이컵 낭비하지 않겠다고 집에 커피 머신을 들였는데 기계의 부품들이 플라스틱으로 되어있었다. 원두는 또 어떻고. 매번 더 많은 원두 생산을 위해 수많은 산림이 파괴되고 있으며, 노동 착취 문제도 있다. 원두가 수입되는 이동 과정의 탄소 발자국도 무시할 수 없다.
수도 없이 마주치는 딜레마 앞에서 이게 진짜 지구를 위해 옳은 걸까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비닐과 플라스틱에서 온전히 벗어난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환경에 전적으로 무해한 삶을 살 수는 없다는, 믿고 싶지 않지만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또 이 모든 딜레마와 모순과 원리 원칙, 소신을 꼼꼼히 따져가며 겨우 타협할 수 있는 물건과 서비스를 찾았다고 치자. 그것은 굉장히 비쌌다. 당연하다. 합당한 권리와 정당한 가격을 매긴 물건들이니까. 그렇지만 그마저도 완벽한 소비와 선택이 될 순 없었다. 어떤 소신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따지고 들어가면 나의 모든 선택에는 언제나 모순이 따랐다.
본질적인 문제는 그저 표면적인 쓰레기를 줄이는 데 있지 않았다. 비닐봉지를 대신해서 종이 포장과 천 주머니를 사용해서 장을 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보다 궁극적으로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바로 내게 꼭 필요한 만큼의 식재료를 구입해 허투루 버려지는 것 없이 다 먹고, 꼭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 고장 날 때까지 끝까지 사용하겠다는 마음가짐과 소비 습관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죄책감에 불편했던 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분명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지구에 유해한 발자국을 남길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그것을 '최소화' 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덜 유해한 쪽'으로 선택할 수는 있겠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낭비하지 않는 삶을 살면 되겠구나 하는 그런 결심이 섰다. 천주머니 들고 장을 보면서 냉장고에는 매번 썩거나 상해서 버리는 식재료를 만들기보다는, 비닐봉지를 몇 장 쓰더라도 내가 구입한 식재료를 남김없이 끝까지 다 먹을 것. 그리고 내게 들어온 비닐봉지 한 장도 소중한 자원으로 귀하게 대할 것. 그 마음가짐이야말로 진정한 제로웨이스트가 아닐까 싶었다.
식사가 좀 부실하더라도 냉장고를 더 이상 탈탈 털 수 없을 때까지 텅 비우고 나서야 장을 본다. 요리를 하다 보면 양이 좀 적은가 싶을 때가 있는데, 예전엔 양을 늘리는 요리를 택했다면 요즘은 그냥 덜 먹기를 택한다. 그래도 늘 배부를 만큼 먹는다. 사실 음식은 조금 아쉽다 싶은 만큼만 먹었을 때 가장 맛있고 속도 편안하다.
조금 부족하다 느껴질 때, 꼭 무언가를 더해야만 되는 건 아니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괜찮아.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마음. 넘치기보다 부족한 상태를 택하는 습관. 그것만 있다면 나는 언제 어디에서나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옷소매의 단추가 똑 떨어져서 집에서 꿰맸다. 합성 섬유의 원피스지만 깨끗하게 관리해서 아주 오래오래 입고 싶다. 꼭 필요한 물건들은 오래 쓸 것들로 신중하게 구입하고, 한번 들인 물건은 쉽게 버리지 않고 곁에 오래도록 두는 방식은 아름답다. 음식도, 물도, 전기도, 시간도, 돈도, 에너지도, 사람 간의 관계도 내게 주어진 것들을 낭비하지 않고, 허투루 쓰지 않고, 귀히 여기며 그렇게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내 몸에도, 가정에도, 지구에도 아름다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