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돈이 남기 시작했다

by 메이 이혜림

이상하게 통장에 돈이 남기 시작했다. 특별히 수입이 늘어났거나, 절약을 위해 힘껏 애를 쓴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대로 충분히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어느 때보다 만족스러운 소비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통장에 남는 돈의 액수가 나날이 커져가고 있었다.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하고 따져보니, 달라진 것이 있기는 했다. 유일하게 달라진 하나, 바로 내가 돈을 쓰는 방식이었다.


단순하게 살다 보니 어느새 돈 쓰는 방식이 더없이 단출해졌다. 미니멀한 소비, 심플한 절약, 우리 집 현금 흐름이 한눈에 보이는 가계부가 내게 돈을 불러왔다. 돈이 아닌 가벼운 삶을 목표로 살아온 것뿐인데, 사실은 돈을 가장 절약하는 방법이기도 했던 것이다.


직관적으로 한눈에 나의 수입과 지출이 보이는 단순한 가계부를 선호하다 보니 돈의 흐름이 어떻게 이동하는지 쉬이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신용카드는 지양한다. 남편의 회사 복지포인트 사용을 위해 필수로 발급해야 했던 카드와 고정지출 전용 카드가 유일한 신용카드. 평소 소비는 오직 체크카드 한 장과 현금으로 지불한다. 신용카드를 쓰면서 미래에 벌 예정인 돈을 당겨 소비 생활을 하지 않으니, 언제나 분수에 맞는 생활이 가능하다.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가계부 마이너스는 나지 않는다.


돈을 아끼는 것만이 목표인 절약은 특별히 하지 않는다. 돈을 모으는 데에 절약은 굉장히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극한의 절약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필요로 한다. 푼돈을 아끼기 위해서 그보다 더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는 뱀파이어처럼 느껴진다. 택시로 10분이면 가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빙빙 돌아서 40분을 가야 한다면, 혹은 천 원 더 싸게 사기 위해 최저가 검색을 하며 한 시간을 허비한다면, 최저 시급이 만 원을 육박하는 이 시대에 정말로 의미 있는 절약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 앱테크,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각종 멤버십 혜택과 회원카드, 다양한 할인이 가능한 신용카드까지. 나는 돈을 절약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런 것들은 하지 않는다. 푼돈을 절약하려다가 더 큰 소비를 불러일으키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앱테크를 하기 위해서는 나의 귀한 개인 정보를 팔아넘겨야 하고, 포인트를 적립해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정 금액까지 지속적인 지출이 필요하며, 신용카드 할인을 받기 위해서는 매달 정해진 금액만큼 카드를 긁어야 한다. 돈을 아끼기 위해 하는 행위들 때문에 우리의 소비는 더 복잡해지고, 더 많아진다. 1% 포인트 적립, 20%의 할인을 위한 더 많은 소비가 ‘절약’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진짜 효과가 있을까 싶다.


배송료 안 내기 위해 더 많은 쇼핑

할인기간 지나기 전에 서둘러 쇼핑

품절될까 봐 쟁이는 쇼핑

대용량이 더 싸니까 쇼핑

5개보다 10개짜리 사는 게 더 이득이니까 쇼핑


나는 더 많은 물건을 갖고 싶어서 또는 필요해서 이런 방식의 쇼핑을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더 저렴하고 더 싸게 사고 싶었을 뿐이다. 돈을 조금이라도 더 아끼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쇼핑 방식이 진짜 나의 돈을 아껴 주었을까.


싸길래 사다 보니 어느새 물건들로 꽉 차서 답답한 나의 집, 크게 산 것도 없는데 자잘한 것들 여러 개 모여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카드값, 열심히 돈을 벌고 알뜰하게 소비하는데 이상하게 말일이 되면 남지 않는 잔고…. 매번 누구보다 열심히 최저가를 찾았고, 적립과 할인 혜택도 꼼꼼하게 받았는데, 왜 나의 지갑은 이토록 가벼워졌을까.


무한 소비의 궤도에서 벗어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싸면 쌀수록 좋다는 상술에 홀라당 넘어간 나의 잘못이다. 많은 양을 살 때보다 적은 양을 구입할 때 더 비싸다. 그래서 적게 사면 왠지 손해를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비싼 것 같아도 필요한 양만큼만 일정 기간 내에 소진할 수 있을 만큼만 구입할 때 돈이 가장 절약된다. 너무 많아서 냉장고 속에서 잊히거나, 지겹고 물려서 더는 못 먹고 결국 썩어서 버려지는 과일들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다. 딱 먹을 만큼만 구입한다면 가장 신선하고 싱싱한 과일을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며, 버려지는 게 없으니 그만큼 절약이 되는 셈이다.


이제는 알고 있다. 아무리 최저가를 찾아도 배송료 삼천 원 내기 싫어서 더 많은 물건으로 장바구니를 채우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천 원 아끼려다 만 원을 더 쓰게 된다. 그럴 바엔 초록 검색 창에 사고 싶은 거 검색하고, 상위 랭크 중 대충 평 좋고 가격 저렴한 것 골라 배송료 삼천 원을 내고 5분 만에 간단하게 쇼핑을 끝내는 편이 좋다. 최저가를 위해 인터넷을 하며 영양가 없는 시간을 보내는 대신에 커피 한 잔 내려 식탁에 앉아 주말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 시간이 훨씬 값지다.


돈보다 귀한 것들을 생각하며 돈을 쓰다 보니 좀처럼 줄지 않던 소비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단순한 쇼핑으로 아낀 에너지와 시간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데에 더 보태어 쓴다. 이렇게 하면 돈을 가장 최우선 순위에 두고 무조건 아끼려고 들었을 때보다 소비가 크게 줄어든다.


요즘 나는 각종 포인트 카드와 무분별하게 발급받은 은행 카드, 쓸데없는 명함으로 가득 차서 늘 뚱뚱하고 무거웠던 지갑 대신에 체크카드 한 장과 현금 몇 장 그리고 신분증, 도서관 대출증만 간결하게 들어있는 작고 가벼운 지갑을 들고 다닌다. 소비는 필요한 것만 미니멀하게, 절약은 시간을 너무 잡아먹지 한에서 심플하게, 그리고 눈을 감으면 모두 그려질 만큼 간단한 계좌와 가계부. 이 단순한 돈 관리는 무리해서 애쓰지 않아도 나의 통장에 여분의 돈을 차곡차곡 쌓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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