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캠핑카 여행에서 배운 것

by 메이 이혜림

일 때문에 주말 부부로 지내던 생활을 청산하고, 남편과 24시간 함께 지내는 본격 신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게는 한 가지 부담이 생겼다. 바로 교대 근무로 힘들게 일하는 남편의 밥상을 주부로서 책임 지고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 메인 반찬은 필수, 밑반찬은 두세 가지 골고루, 반드시 국이나 찌개도 곁들여야 한다는 생각에 가뜩이나 요리를 잘 못하는 나는 점점 더 요리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풍성하고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주방 앞에 서서 종종 거리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 내가 변할 수 있었던 계기는 세계여행 중 머물게 된 뉴질랜드에서의 한 달간의 캠핑카 생활이었다. 여행 성수기를 코 앞에 두고 뉴질랜드에 도착한 우리 부부는 부담스러운 렌트비에 모든 것이 갖춰진 캠핑카를 빌릴 수 없었다. 대신 트렁크 쪽에 간이 싱크대를 만들 수 있는 작은 밴을 겨우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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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여행에서 우리의 하루는 언제나 분주했다. 식사 준비와 뒷정리 때문이었다. 집에 가만히 있어도 아침밥 먹고 나면 설거지, 설거지하고 나면 점심밥 준비, 점심 설거지하면 저녁밥 준비 그렇게 무한 반복의 궤도를 타야 했는데, 캠핑카 여행을 하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야외에서 밥을 지어먹으려니 시간이 배로 들었다. 매일 호젓하게 일몰을 구경할 새도 없이 저녁밥 먹고 설거지하고 씻고 나면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참 이상했다.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요리하고 정리하는 우리 부부와 다르게 주변 다른 캠핑족들은 언제나 여유로워 보였다. 늘 산책 중이거나, 의자에 앉아 카드 게임을 하거나 낮잠을 자고는 했다. 황홀한 일몰을 감상하며 맥주 한 잔을 하는 그들의 자리 옆에서 분주하게 마지막 식사 뒷정리를 하는 상반된 우리의 모습에 나는 순간 이상함을 감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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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그 친구들을 유심히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캠핑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함이라는 것을.


그들이 결코 나보다 근사한 캠핑카를 타고 다닌다거나 편리한 물건들이 많아서 캠핑 생활이 여유로운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일상에서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많은 것들을 배제하고, 빼고, 제외하고, 생략하고, 내려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아침 식사는 대부분 시리얼이나 과일, 잼 바른 빵이나 간단한 야채를 넣은 빵이었다. 점심과 저녁도 마찬가지였다. 파스타를 해 먹거나 소시지를 굽고 야채를 볶아 간소하게 먹었다. 언제나 만들기에도 쉽고, 먹기에도 쉽고, 뒷정리는 더 쉬운 음식들이었다.


샤워는 가끔 건너뛰는 것이 당연했고, 작은 대야 하나에 물을 담아 세수와 양치를 끝냈다. 씻고 난 대야에 물을 조금 더 담아 손빨래를 하고, 몇 개 나오지 않은 그릇들을 그 대야에 담아 씻어냈다. 깨끗한 물이 귀한 캠핑장에서 작은 대야 하나와 물 한 병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정말이지, 생활하는 패턴 자체가 단순하고 자유로웠다.



IMG_3048.jpeg 과일이 채 담기지도 않을 만큼의 적은 물로 과일 씻기


IMG_4459.jpeg 설거지가 필요 없고 불과 물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음식으로 점심 먹기


나도 그들을 따라 단순한 캠핑 생활을 이어 나가보기로 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샤워였는데, 매일 샤워를 해야 하는 나로서는 3일간 샤워를 포기한다는 것은 굉장한 ‘내려놓음’이었다. 그런데 3일간 샤워를 안 해도 내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가장 힘든 것을 내려놓고 나니, 다른 것들은 모두 순조로웠다. 아침에는 과일을 한가득 먹는 식사를 하고, 점심에는 토마토, 오이, 양상추와 치즈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를 먹거나 그냥 과일잼 바른 식빵을 먹기도 했다. 저녁에는 냄비밥과 반찬 한 가지를 간단하게 만들어 먹었다.


그렇게 식사가 단순해지자 매일 피곤에 지쳐 잠들던 우리에게도 시간이라는 것이 남기 시작했다. 캠핑장 제일 좋은 명당자리에 접이식 의자를 펼치고 앉아 눈을 감고 쉴 새 없이 치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때로는 뜨겁게 저무는 일몰을 감상하기도 하고, 틈틈이 적던 일기를 빼곡하게 채우기도 했고, 다른 캠핑족들과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 간소한 식생활 덕분에 우리의 하루에도 여유라는 것이 스며들었다. 비로소 우리는 캠핑카 여행의 참 재미를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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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것을 탓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과 가진 것에 만족하며 여유를 한껏 즐기며 여행하는 그들을 보며 단순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 가진 것이 적을수록 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뉴질랜드 이후의 세계여행에서도 우리는 한 그릇 식사를 즐기거나 밥과 반찬 한 두 가지만 만들어 아주 간소하게 먹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먹지 않는 삶의 가벼움을 알게 된 이상,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우리의 식탁은 변함없이 간소하다. 더 이상 우리의 식탁에는 메인 메뉴와 밑반찬이라는 구별이 없다. 오징어볶음에 쌈채소만 올려 먹기도 하고, 달걀 프라이와 멸치 볶음만 가지고 밥을 먹기도 한다.


이따금씩 조금 더 해서 먹을까라는 생각이 스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뉴질랜드 캠핑족을 생각한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맥주 한 잔 하며 노을을 즐기던 그들. 간소한 식사를 하고 난 뒤 남겨진 홀가분함과 자유로움, 그리고 가벼웠던 시간들까지.


그리고는 헬렌 니어링의 말을 속으로 되뇌인다.

“식사를 간단히, 더 간단히. 이루 말할 수 없이 간단하게 준비하자. 그리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곱게 바느질하는데 쓰자. 자연과 대화하고, 테니스를 치고, 친구들을 만나는데 쓰자.”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우리의 식탁을 조금 더 공백으로 채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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