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곱슬머리다. 초등학생 때부터 매직 파마를 하지 않은 머리로 지내본 적이 없다. 곱슬머리가 콤플렉스였기 때문에 매년 1-2회씩 주기적으로 매직 파마를 해왔었고,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대략 열 살부터라도 해도 거의 20년을 매직 파마를 하면서 살아온 건데, 난 왜 곱슬머리가 조금이라도 자라면 무조건 다시 헤어숍에 가서 쫙쫙 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몇 년 전 결혼식을 앞두고 헤어숍에서 머리를 하는데 내 머리를 만지던 숍 실장님이 말했다.
“이 ‘예쁜’ 곱슬머리를 왜 가만히 안 두고 매직을 하시는 거예요? 신부님은 머리카락도 얇은 편이라 매직하면 손상도 심할 텐데, 축 쳐지기도 하고요.”
누군가에게 ‘곱슬머리로도 충분히 예뻐’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어본 순간이었다. 동시에 내가 갖고 있던 미의 기준인 ‘곱슬머리는 안 돼. 생머리가 예쁜 거야.’라는 편견이 파괴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사실 잦은 시술 탓에 내 머리카락은 늘 상해있었고, 힘없이 쳐져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언제나 매직 파마를 그만두고 싶었다. 독한 약품도 싫고, 엉덩이 아프도록 앉아있어야 하는 헤어숍에서의 시간도 지루했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내가 나의 곱슬머리를 좋아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들에게 더 예뻐 보이기 위해서는 못생기고 지저분한 곱슬머리를 감추고, 늘 찰랑찰랑 거리는 긴 생머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남들에게 예쁜 여자로 보이고 싶었다.
작은 찰나의 계기, 결혼식을 앞두고 만난 헤어숍 실장님의 말 한마디로 ‘어디 한번 곱슬머리로 살아볼까’라는 갑작스러운 용기가 생겼다. 더 이상 매직 파마를 하지 않기로 했고, 있는 그대로의 곱슬머리를 사랑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헤어숍에 발길을 끊었다.
결심은 생각보다 쉬웠지만, 사실 곱슬머리로 살아가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곱슬머리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매직 시술을 하고 한두 달만 지나도 본래 곱슬머리가 자라기 시작하면서 두피 쪽 머리가 아주 많이 지저분해진다. 앞머리 쪽은 너무 촌스러워서 고데기가 없으면 밖에 나가기도 싫을 정도다.
처음에는 곱슬머리가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왠지 곱슬머리 때문에 내가 더 촌스럽고 못생겨 보이는 것 같아서 힘들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매직 파마만은 하지 않기로 고집부렸던 것은 나는 정말로, 온전히, 나 자신으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었다. 나는 정말로 더 이상 일 년에 두 번씩 미용실에 가서 꼬박 4-5시간을 엉덩이가 다 무르도록 앉아서 독한 약품 써가며 머리를 피고 싶지 않았으니까.
곱슬머리로 지낸 지 2년쯤 지나자, 매직 파마 시술을 받아 부자연스럽게 펴있던 머리끝을 모두 잘라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온전히 나의 곱슬머리만이 남았다. 긴 인내 끝에 만난 천연 곱슬머리는 놀라울 정도로 예뻤다. 그날 이후 나는 헤어숍 원장님들이 자주 말하는 “고객님, 이 머리는 고데기예요.”라고 말하는 그런 자연스럽게 구불거리는 예쁜 머리칼을 갖게 되었다. 더 이상 독한 시술을 받지 않으니 늘 건강한 머릿결은 덤이었다. 날씨, 습도에 따라 머리카락의 컬과 결이 달라져서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지만. 거울 속 지금의 곱슬머리를 지닌 내 모습이 훨씬 더 나다워서 무척 만족스럽다. 이마 쪽 헤어라인은 여전히 지렁이처럼 꼬불거리는데 이제 누군가 시선이 내 머리에 오래 머물면 콤플렉스를 들켰다는 듯이 당황하지 않고, “응. 나 곱슬머리야. 요즘 매직 안 하고 길러보고 있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곱슬머리로 지낸 지 5년.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곱슬머리로 살겠다고 결정하길 참 잘했다.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헤어숍에 더는 갈 필요가 없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제일 좋은 건 가장 자연스럽고, 또 가장 나다운 나의 모습을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나의 결점으로 보였던 것, 나의 콤플렉스들이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지 않는다. 얼굴 가득한 주근깨를 가리기 위해 파운데이션 바르는 것을 멈췄고, 작은 가슴을 숨기기 위해 두꺼운 패드를 넣은 뽕브라를 착용하는 것도 그만두었고, 비 오는 날이 제일 싫었던 곱슬머리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으며, 스물아홉 살부터 나오기 시작한 새치들도 더 이상 뽑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하는 마음. 이런 마음을 갖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 본연의 예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각자 예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하며 꽁꽁 숨기고 싶었던 부분이 사실은 나의 가장 사랑스럽고, 귀엽고, 매력적인 부분일 때가 많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해주지 않는 모습은 타인도 사랑해줄 수 없다. 내가 먼저 나를 사랑하는 법, 나는 곱슬머리를 기르며 배웠다. 이제는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그리고 이왕이면 내가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고 싶다.